二夜



  너는 저녁놀과 새벽빛을 눈에 머금고

  폭풍우를 예고하는 밤처럼 향기를 발산한다


  보들레르, 아름다움에 바치는 찬가 中






  흰 것을 기분 나쁘게 여기는 성정대로라면 미야 아츠무는 스가와라 코우시를 불쾌하게 여겨야하는 것이 맞았다. 객관적인 흰 것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눈으로 보이는 것이 그닥 중요치 않다는 것을 미야 아츠무는 아주 오래 전에 깨달았으므로. 애초에 미야 아츠무는 그 보이는 흰 것을 표방하는 사람이었다. 친절함과 웃음은 그의 장기였다. 사람들은 자주 친절과 다정을 혼동했고 미야 아츠무는 기꺼이 그들에게 친절하고도 다정한 사람이 되어주었다. 작정하고 만들어진 흰색은 역겨울지언정 그 속이 훤했다. 아주 견고한 그 한 꺼풀만 벗겨내면 속에 시커먼 것들이 있었다. 반면에 스가와라 코우시는 너무 희어서 깊이를 가늠하기가 힘든 류의 사람이었다. 다만 은연중에도 절대 얕지 않을 것을 직감해서 미야 아츠무는 스가와라 코우시를 싫어해야 맞았다. 이제까지대로라면 그래야만 했다. 그러니까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흰 스가와라 코우시에게 미야 아츠무는 혐오라던가, 마이너스 쪽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놀라울만큼 그런 감정이 피어오르지 않아서 그 자신이 더 당황할 정도였다. 연극을 좋아하고, 배우가 꿈이라고 말하던 그 밍밍한 스가와라 코우시는 반듯했지만 어느 틀에도 어울리지 않았고, 그래, 희지만 빛나지가 않았다.

  유난이라는 생각은 그에게도 있었다. 그냥 같은 수업 듣는 타과생인데 왜. 그냥, 그냥 아주 우연히 같은 조가 된 것 뿐이고 수업이 끝나면 원래 그랬던 것처럼 완전히 멀어질 관계인데 굳이. 그러니까 자신이 이렇게까지 구는 이유는 전적으로 스가와라 코우시에게 있다고, 미야 아츠무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주 오랜 버릇이 있었다. 사람을 보면 들여다보고 재단해 ‘이런’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버릇. 그리고 대부분의 ‘이런’ 사람이 ‘그런’ 사람이었으므로 미야 아츠무는 자신의 직감과 오랜 시간 사람들을 관찰하며 갈고 닦아온 그 분석력을 신용했다. 그런데, 스가와라 코우시에겐 그게 먹혀들지가 않았다. 미야 아츠무는 스가와라 코우시가 자신의 눈이 미치는 범위의 저 너머에 얌전하게 앉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손을 뻗어 잡을 정도로 절실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는 내내 이 묘한 이질감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쯤 되면 스가와라 코우시가 불쾌할만도 하련만 정말로 의외로 불쾌, 그러니까 유쾌하지 않은 감정은 그에게서 일어나지 않았다. 애초에 유쾌란 또 무엇이며……, 길게 생각해봤자 답이 없을 것을 알아서 미야 아츠무는 그냥 스가와라 코우시를 조금 다른 부류로 넣어두기로 했다. 이런 인간도 있겠구나. 드물어서 처음인 것이겠구나 하고. 다만 그것은 오랫동안 유지해온 체제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일 뿐이었으므로 큰 효가가 나타나지 않았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임을 미야 아츠무는 잘 알고 있었다.


  늦어도 내일까지라는 말대로 스가와라 코우시는 해가 질 즈음에 문자를 보내왔다. 학교에서 버스로 30분, 미야 아츠무의 집에서 전철로 10분 정도가 걸리는 거리에 있는 극장의 이름이 보였다. 연극은 셰익스피어의 십이야十二夜. 열두 개의 밤. 바로 다음으로 시작 시간을 보낸 스가와라 코우시는 이번엔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야 아츠무는 스가와라 코우시가 셰익스피어의 이 연극을 좋아하는지, 그가 배우가 된다면 이 극의 일원이 되고 싶어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나흘 후, 스가와라 코우시와 미야 아츠무는 도쿄의 작은 극장으로 셰익스피어의 십이야를 보러 가야한다. 연극은 교수가 정한 것이고 셰익스피어는 스가와라 코우시가 정한 것이다. 미야 아츠무는 휴대전화 옆 버튼을 눌러 메세지가 보이지 않도록 했다. 그는 뒤를 돌아 천천히 입을 떼었다.


   “사무. 나흘 뒤에 좀 늦게 들어올지도 몰라.”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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