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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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플(문체와 분량을 참고해주세요.)

 [아카스가http://chungpodo.tistory.com/31 (2,984자)

 [오이스가] http://chungpodo.tistory.com/29 (3,741자)

 [우시시라http://chungpodo.tistory.com/27 (5,530자)

 [오이스가] http://chungpodo.tistory.com/34 (5,694자)

 [오이스가] http://chungpodo.tistory.com/17 (10,387자)


 돈을 받고 하는 일인만큼 퀄리티는 위 샘플들보다 더 신경을 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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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이큐 주력입니다. 만

 - 자캐 / 드림 / 2.5D / HL, BL, GL / 논컾 모두 가능힙니다. 편하게 문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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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三夜


 

  그렇지만 그 모든 것 가운데 진실이 얼마나 될까?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형언이란 얼마나 무의미한가. 미야 아츠무는 퍽 감상적인 생각을 했다. 언어는 항상 상황에 비해 조악할 수밖에 없었고 그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의 한계는 너무나도 뚜렷했다. 그럼에도 언어를 저버리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든 속박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에 있을 것이라고 그는 이어 생각했다. 간직하지 못해 안달이 난 것이 인간이고 붙잡아두지 못해 우는 것이 본성이었으며 미야 아츠무는 자신이 그 범주에 든 한낱 인간이라는 것을 굳이 부정하진 않았다. 명명하는 순간, 형언하는 때에 휘발되어 사라져버리는 것들은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예 사라져버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아서 사람들은 계속해서 단어를 나열하고 이미지를 남기는 것인지도 몰랐다.

  감상의 원인은 전적으로 그에게 있었다. 다만 미야 아츠무는 그를 위한 문장을 쓸 재주도, 카메라 렌즈를 들이밀 기술도 없었기에 지켜보는 것으로 대강 만족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고작 삼일만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는 그로서도 알 길이 없었다. 그가 인지하고 있는 것이라곤 스가와라 코우시는 눈을 잡아챌만 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런 그에게 계속해서 눈길을 두고 있는 자신 뿐이었다. 스가와라 코우시는 형언하기가 어려운 사람이었다. 언어가 어디까지 그에게 미칠지도 문제였다. 알고 있는 형용사가 많지 않았고 또 그를 정의할 수 있는 하나의 단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의문이었다. 희지만 빛나지 않고 고요하지만 확연하며 단정하지만 묶여지지 않는 상태를 정의할 말을 미야 아츠무는 알지 못했다. 저 조악한 형용사의 나열 중 얼만큼이 그에게 해당하는 것인지도 확실치 않았다. 언제나 이미지는 진실했지만 또 거짓투성이였으므로.

  언어는 시인의 손에 들어가면 꽃이 된다던데 미야 아츠무는 시인도 원예사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표현하는 대신 묘사하기로 했다. 눈에 들어온 모습을 한치의 꾸밈 없이 아주 직관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그의 최선이었다. 우선 그는 얇은 커튼을 통과해 들어온 오전의 햇빛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빛에 반사되는 게 아니라 흡수한다는 느낌. 그래서 빛나지 않는지도 몰랐다. 교수의 강의에 집중한 듯 고개를 끄덕임에 따라 얇고 힘이 세지 않은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옆자리에 앉았다면 샴푸 냄새를 맡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왼쪽 뒷자리는 그를 바라보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눈 아래 찍힌 점을 배제하고 그를 논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를 이루는 것들이 만들어질 때, 육체가 만들어지고 곧은 손가락 위에 손톱이 내려앉고 머리카락이 자라난 후 그 마침표로 찍어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했다. 그정도로 그건 확연했고 맺어졌다는 느낌을 주었다. 긴 문장 끝의 점. 그다지 매초롬하지는 않지만 끝이 잘빠진 눈의 마침. 그 점은 그랬다.

  고개를 돌리려는 낌새가 보여 펴놓은 노트 위로 시선을 옮겼다. 눈이 마주친다면 언제나처럼 친절한 낯짝을 하고 우연인 체하며 웃으면 되는 일이었지만 그 얼굴을 할 수 있을 지가 작은 의문이었다. 확실치 못한 일은 하지 않는 게 나았고 그래서 고개를 숙였다. 스가와라 코우시가 정말 고개를 돌렸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펜으로 교수의 말을 받아 적는 체를 하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스가와라 코우시의 시선은 다시 교수와 프로젝터로 띄운 PPT로 향해있었다. 그 올곧은 시선의 끝에 늙은 교수와 고루한 글자가 있다는 것은 낭비로 느껴졌다. 교수는 소포클레스에 대한 이야기로만 강의를 채우려는 것 같았다. 미야 아츠무는 턱을 괸 채로 펜을 굴렸다. 구름에 가렸던 해가 드러남과 거의 동시에 교수가 슬라이드를 바꾸었다. 피라미드 모양의 도형이 나오자 사각대는 소리가 크게 늘었다. 스가와라 코우시도 고개를 숙이고 필기에 전념했다. 뒷목의 머리칼이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볼록하게 솟은 뼈를 핥듯이 쳐다보았다. 결국 극이라는 건 상승과 하강의 조화입니다. 교수가 말했다. 상승과 하강이 만나는 곳을 우리는 정점이라고 칭하는데 이 정점이 어디가 될 지는 모릅니다. 극의 초반부일 수도, 정석적으로 중반일 수도 아예 끝에서야 나타날 수도 있어요. 스가와라 코우시는 고개를 들어 교수를 주시했고 미야 아츠무는 그런 스가와라 코우시를 주시했다. 이내 그는 깨끗한 노트 위로 선을 그었다. 끝없이 위를 향해가면 좋으련만 노트는 너무 작아서 선은 끊기거나 꺾일 수밖에 없었다. 모든 슬라이드가 넘어갔고 검은 화면이 나타나자 교수는 마이크를 떼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스가와라 코우시는 가방으로 필통과 노트를 집어넣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강의실 끝에 선 교수에게 닿을 수 없는 크기의 목소리였다. 뱉는다기 보다는 입안에서 맴도는 것을 내었다는 느낌. 스가와라 코우시 답다고 그는 생각했지만 누군가가 스가와라 코우시 다운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잘 대답할 자신은 없었다. 그는 크지 않게 말했고 배우가 되고 싶어 했었으며 오전의 햇빛을 목덜미에 얹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그정도 뿐이었다

  느린 손으로 가방을 메며 뒷문을 나서는 등을 보았다. 노트 위로 그었던 선과는 달리 스가와라 코우시의 어깨는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다음 수업까지도 그 등에 대한 생각은 사그라들지 않아서 미야 아츠무는 전공 교수의 질문에도, 몸이 좋지 않냐는 동기의 물음에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저녁을 먹을 거냐는 물음에 고개를 젓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눕고 나서도 그에 대한 잡념은 맺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증식해 천장과 책장의 빈 틈새와 창문 밖 검은 하늘을 가득 채웠다. 별 하나 보이지 않는 밤은 스가와라 코우시와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고 미야 아츠무는 생각했다. 밤의 그에겐 달이 움직이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릴지도 모르겠다고. 한참을 뒤척이던 그는 눈을 감고 햇빛이 묻어있던 스가와라 코우시의 목덜미를 떠올렸다. 곧게 아래로 뻗었다가 밑으로 흘러내리던 선을 더듬으며 그는 아주 오랜만에 수음했다. 욕망으로 점철된 손으로 어떤 일을 할지, 할 수 있을지 그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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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二夜



  너는 저녁놀과 새벽빛을 눈에 머금고

  폭풍우를 예고하는 밤처럼 향기를 발산한다


  보들레르, 아름다움에 바치는 찬가 中






  흰 것을 기분 나쁘게 여기는 성정대로라면 미야 아츠무는 스가와라 코우시를 불쾌하게 여겨야하는 것이 맞았다. 객관적인 흰 것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눈으로 보이는 것이 그닥 중요치 않다는 것을 미야 아츠무는 아주 오래 전에 깨달았으므로. 애초에 미야 아츠무는 그 보이는 흰 것을 표방하는 사람이었다. 친절함과 웃음은 그의 장기였다. 사람들은 자주 친절과 다정을 혼동했고 미야 아츠무는 기꺼이 그들에게 친절하고도 다정한 사람이 되어주었다. 작정하고 만들어진 흰색은 역겨울지언정 그 속이 훤했다. 아주 견고한 그 한 꺼풀만 벗겨내면 속에 시커먼 것들이 있었다. 반면에 스가와라 코우시는 너무 희어서 깊이를 가늠하기가 힘든 류의 사람이었다. 다만 은연중에도 절대 얕지 않을 것을 직감해서 미야 아츠무는 스가와라 코우시를 싫어해야 맞았다. 이제까지대로라면 그래야만 했다. 그러니까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흰 스가와라 코우시에게 미야 아츠무는 혐오라던가, 마이너스 쪽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놀라울만큼 그런 감정이 피어오르지 않아서 그 자신이 더 당황할 정도였다. 연극을 좋아하고, 배우가 꿈이라고 말하던 그 밍밍한 스가와라 코우시는 반듯했지만 어느 틀에도 어울리지 않았고, 그래, 희지만 빛나지가 않았다.

  유난이라는 생각은 그에게도 있었다. 그냥 같은 수업 듣는 타과생인데 왜. 그냥, 그냥 아주 우연히 같은 조가 된 것 뿐이고 수업이 끝나면 원래 그랬던 것처럼 완전히 멀어질 관계인데 굳이. 그러니까 자신이 이렇게까지 구는 이유는 전적으로 스가와라 코우시에게 있다고, 미야 아츠무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주 오랜 버릇이 있었다. 사람을 보면 들여다보고 재단해 ‘이런’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버릇. 그리고 대부분의 ‘이런’ 사람이 ‘그런’ 사람이었으므로 미야 아츠무는 자신의 직감과 오랜 시간 사람들을 관찰하며 갈고 닦아온 그 분석력을 신용했다. 그런데, 스가와라 코우시에겐 그게 먹혀들지가 않았다. 미야 아츠무는 스가와라 코우시가 자신의 눈이 미치는 범위의 저 너머에 얌전하게 앉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손을 뻗어 잡을 정도로 절실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는 내내 이 묘한 이질감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쯤 되면 스가와라 코우시가 불쾌할만도 하련만 정말로 의외로 불쾌, 그러니까 유쾌하지 않은 감정은 그에게서 일어나지 않았다. 애초에 유쾌란 또 무엇이며……, 길게 생각해봤자 답이 없을 것을 알아서 미야 아츠무는 그냥 스가와라 코우시를 조금 다른 부류로 넣어두기로 했다. 이런 인간도 있겠구나. 드물어서 처음인 것이겠구나 하고. 다만 그것은 오랫동안 유지해온 체제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일 뿐이었으므로 큰 효가가 나타나지 않았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임을 미야 아츠무는 잘 알고 있었다.


  늦어도 내일까지라는 말대로 스가와라 코우시는 해가 질 즈음에 문자를 보내왔다. 학교에서 버스로 30분, 미야 아츠무의 집에서 전철로 10분 정도가 걸리는 거리에 있는 극장의 이름이 보였다. 연극은 셰익스피어의 십이야十二夜. 열두 개의 밤. 바로 다음으로 시작 시간을 보낸 스가와라 코우시는 이번엔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야 아츠무는 스가와라 코우시가 셰익스피어의 이 연극을 좋아하는지, 그가 배우가 된다면 이 극의 일원이 되고 싶어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나흘 후, 스가와라 코우시와 미야 아츠무는 도쿄의 작은 극장으로 셰익스피어의 십이야를 보러 가야한다. 연극은 교수가 정한 것이고 셰익스피어는 스가와라 코우시가 정한 것이다. 미야 아츠무는 휴대전화 옆 버튼을 눌러 메세지가 보이지 않도록 했다. 그는 뒤를 돌아 천천히 입을 떼었다.


   “사무. 나흘 뒤에 좀 늦게 들어올지도 몰라.”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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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一夜



  나는 진정 사는가 싶게 살아 있는 것을

  불꽃 속에서 죽기를 갈망하는 것을 찬미한다.


  괴테, 거룩한 갈망 中






  사실 미야 아츠무의 3학년 1학기 시간표에서 월․수 9시 30분의 희곡의 이해는 그닥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전공도 아닌 2학점짜리 강의는 정말 학점에 구멍이 나지 않게 하려는 의도에서 넣은 것이었고 열심히 임할 생각도, 그렇다고 아예 버릴 생각도 없는 그런 밋밋하고 별 의미 없는 수 많은 강의 중 하나였던 것이다. 프레젠테이션으로 채워진 첫 수업에서조차 미야 아츠무는 제일 구석 뒤편에 앉아 늙은 교수의 말을 흘려듣고 있었다. 2학점 교양 주제에 조별 과제에 발표가 있는 것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10분 여 정도의 짧은 것이라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다. 창 밖엔 봄이 한창이었다. 교정을 가득히 채운 사람들의 표정도 벚나무도 모두 봄이었다. 햇빛이 따듯해서 미야 아츠무는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기분이, 나쁘다. 나쁘다라. 사소한 단어에 매달리는 것은 그의 특기가 아니었지만 아주 잠깐의 취미가 되긴 했다. 그는 봄과 나쁘다라는 말의 상관관계에 몰입했다. 세간의 인식으로 치면 전혀 관련이 없는 단어였다. 봄은 따듯하고 부드러웠으며 나쁘다는 차갑고 날이 서있었다. 미야 아츠무는 자신이 후자에 더 가까운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태생이 그랬다. 아주 어릴 적의 버릇을 그는 고치지 못했고 사실 고칠 마음도 없었다. 기어가는 곤충을 보면 다리를 떼고 싶었고 돌 틈새로 핀 꽃은 밟아줘야했다. 어린 아이의 순진무구한 잔학함이 ‘어린’이라는 단어에 포함되지 않을 때까지 이어진다면 그건 본성인 거라고,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이유에서 미야 아츠무는 성악성을 신봉했다. 인간은 본디 악하다. 사람을 죽이고 난도질해 뉴스와 신문에 나오는 것만이 악이 아니었다. 흰 것이 있으면 어떤 색으로라도 물들이고 싶어하는 욕망, 그는 그것을 악이라도 규정했다. 또 그러한 연유로 그는 악을 사랑했다. 희기만 한 것은 어쩐지 기분이 나쁜 이유에서였다.

   2인으로 짜여진 조는 교수의 임의였다. 미야 아츠무, 스가와라 코우시. 호명된 이름의 주인은 강의실의 가장 중앙에 앉아 있었다. 불려진 이름에 들린 팔이 하얬다. 다만 형광등 아래서도 반짝인다는 느낌은 없었다. 분을 바른 대리석 같다고 생각했다. 잘 갈아진 대리석 위에 장미가루를 섞은 분을 바른 것 같은 색이라고. 미미한 혈색이 돌았다. 손목 위로 어렴풋이 드러난 핏줄은 파랄 것이다. 보지 않았지만 짐작하건대 그랬다. 어렸을 적 어머니의 치맛바람에 몇년인가를 다녔던 미술학원은 종종 이런식으로 그의 감상을 도왔다. 미야 아츠무는 감상과 먼 사람이니 결국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는 말이었다. 교수는 별 시답잖은 이야기를 몇 번 하더니 조원과 회의를 하라고 했다. 중앙의 회색 머리에게 다가간 미야 아츠무는 손가락을 굽혀 작게 책상을 쳤다. 꾸며낸 미소를 얼굴이 띄우는 것은 아주 오랜 습관이었다. 그는 친절해보이는 얼굴을 잘 알았다. 집에 있는 똑같은 얼굴과 다르게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거울보다도 정확했고 그래서 쉬웠다. 똑, 똑. 문에 노크를 하는 듯한 동작에 스가와라 코우시가 고개를 들었다. 조원이요. 아, 네.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기에 작게 고개를 까닥여 답했다. 책상을 붙여 앉고 전화번호를 교환하고서도 이렇다 할 말은 나오지 않았다. 대부분의 다른 조가 그랬고 몇 명만이 꽤 소리를 내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연극 좋아하세요?”


  스가와라 코우시의 첫마디는 그거였다. 연극 좋아하세요? 미야 아츠무는 고개를 저었다. 연극은 좋아한다거나 싫어한다는 범주에 끼지 못했다.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게 맞았다. 연극은 그에게 생각을 할애할만 한 대상이 아니었다. 그의 부정에도 스가와라 코우시는 실망한다거나 아쉽다는 기색이 없었다. 어색한 사이를 타개할만 한 질문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마치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 그는 말을 이었다.


  “저는 좋아해요. 연극.”


  아. 그러세요. 네. 그래요. 그러시구나. 영양가 없는 말이 뒤를 따랐다. 미야 아츠무는 어떤 연극을 좋아하냐던가, 왜 연극을 좋아하냐는 질문도 던지지 않았다. 궁금하지 않았을 뿐더러 흥미없는 이야기를 예의상 이어가는 것은 그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는 친절함은 가장할 수 있을지언정 다정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원하는 것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 성정이었지만 그로서도 스가와라가 그런 질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스가와라는 좀, 아니 많이 희어서 읽기가 어려웠다. 저. 스가와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배우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러셨구나. 미야 아츠무는 대답을 먼저 내어놓고 이어 생각했다. 배우라. 화려함이 느껴지는 단어는 스가와라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니 배우라는 직업도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빛을 내고 반짝여 눈을 사로잡는 사람들이라던데 스가와라는 무대에서든 스크린에서든 타인의 눈을 잡아챌만 한 사람은 아니라고. 과거형으로 뱉어진 말이니 그도 그 꿈을 접은 것일지 모른다. 미야 아츠무는 다시 한번 웃었다. 소리는 내지 않고 얼굴로만. 모두가 친절하다고 여기는 그 얼굴이었다.


  “발표는 언제 하도록 할까요?”

   

  배우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말을 의미만 남겨두고 단어를 재조립해 건넸다. 스가와라는 최대한 빨리 하자고 말했다. 동감이었다. 근처의 극장에서 하는 극이 있어요. 그걸 보고. 네. 발표 시간도 짧으니까요. 최대한 빨리 하고 끝내버려요. 미야 아츠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극은 제가 알아보고 말씀을 드릴게요. 늦어도 내일까지는. 그는 스가와라 코우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처럼 아주 작은 동작으로 인사를 하고 둘은 흩어졌다. 스가와라 코우시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렸고 미야 아츠무는 계단을 내려갔다. 본관에 나와 맞딱드린 교정은 봄이었고 대기에 그 기운이 만연했다. 미야 아츠무는 다시 봄과 나쁘다는 단어를 떠올렸다. 스가와라 코우시는 봄과 나쁨의 어드메에도 접하지 않는 존재라고 그는 정의했다. 부드럽고 밝은데 또 부드럽고 밝지가 않았다. 흰데 빛나지가 않았다. 그 생각은 지금처럼, 침대에 누워 천장의 형광등을 바라볼 때까지 계속되었다. 길게 이어지는 생각엔 종착지가 없었다. 애초에 길을 원하고 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미야 아츠무는 불을 끄고 눈을 감았다. 꿈에선 온통 구름과 안개로 가득찬 곳이 나와 그는 눈을 뜨고 있음에도 한 치 앞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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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줌이 채 안될 것 같은 꽃다발을 카운터 위로 던지듯 내려놓으며 스가와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마음이 계속 모질지는 못해서 스가와라는 슬쩍 눈치를 보다가 꽃을 만지작대곤 사이에 꽂힌 카드를 빼들어 내려놓았다. 눈물을 흘리는 모양의 이모티콘이 그렇게 가증스럽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오히려 즐기는 거면 몰라도. 깊게 내쉬어진 숨에 얇은 카드가 팔랑이며 뒤집혔다. 뒷면에도 글씨가 있는 것에 스가와라는 종이를 집어 들었다.

 

   「오년 전 스가와라 씨 덕분에 좋아하게 된 꽃이예요. 팬지의 꽃말을 알고 있나요?

 

   꽃말 같은 걸 아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면 한참 잘못 본 건데. 스가와라는 핸드폰을 들어 팬지의 꽃말을 검색했다. 나를 생각해주세요. 나를 생각해주세요? 성공하셨네. 몰래 꽃만 놓고 가는데 생각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있나. 스가와라는 카드를 노려보다가 오년 전이라는 단어에 눈을 두었다. 오년 전. 팬지. 작은 꽃다발로 시선을 돌린 스가와라는 이내 작게 손뼉을 쳤다. 어디서 많이 본 꽃 같더라니 카페를 처음 개업했을 때 가게 앞에 작게 만들었던 화단에 심었던 꽃이었다. 그 해 여름에 무지막지한 태풍이 불어 흔적도 없이 날아가긴 했지만. 무언가 단서가 잡혔다는 생각에 스가와라는 계산대 밑에서 종이를 꺼내 그제까지 왔던 손님들의 이름을 적어내려갔다. 길게 쓰인 리스트에서 개업 때부터 그 해 여름까지 가게에 온 적이 있던 손님을 추려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어제 온 손님들의 이름을 체크할 때 스가와라는 더욱 집중했다. 오이카와는 아니었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으니까. 우시지마 교수는 삼년 전 쯤 처음으로 가게에 왔고 카게야마는 신입생이니 제외. 마지막으로 남은 이름들에 스가와라는 빨간 펜으로 밑줄을 그었다. 이 중에 있어도 문제, 없어도 문제였다. 스가와라는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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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이 열리는 소리에 스가와라는 얼굴의 수심을 지워내고 친절한 사장님의 것을 덮어썼다. 오늘의 첫 손님은 사와무라였다. 카게야마는 시험 기간이라 자주 들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다음번에 온다면 카라멜 시럽 잔뜩 넣은 마끼아또를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주문받은 커피를 만들며 스가와라는 넌지시 사와무라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다이치.

 

   “정착한다는 건 어떤 느낌이지? 그러니까 사랑받는다는 거 말이야.”

 

   스가와라의 말에 사와무라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랑이란 단어는 언제나 스가와라와는 가까운 듯 멀었다. 적어도 제 생각엔 그랬다. 고등학생 때부터 꽤 화려한 연애들을 했던 스가와라는 거의 대부분 마지막에 우는 역할이었다. 저 좋다고 하는 좋은 놈들이 많음에도 스가와라는 흔히들 말하는 나쁜 남자에게 끌려했고 그 나쁜 남자가 망할 새끼가 되고나서야 관계는 파탄을 맞는 것이었다. 스가와라는 거의 항상, 아니 매번 울었고 그 옆에서 티슈를 뽑아주는 게 자신의 몫이었던 사와무라였다. 친구의 진지한 물음에 사와무라는 고심하며 턱을 몇 번인가 쓸었다.

 

   “좋지.”

   “그게 다야?”

   “그냥 그게 제일 가까운 말일 것 같아. 좋아.”

 

   사랑받고 있다는 거, 그러니까 내가 누군가에게 단순한 호감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니까. 그 기분이 좋아. 쌍방이라면 더 좋겠지.

 

   “난 그래서 너도 좋았으면 좋겠어, 스가.”

   “무리야.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누구인지는 차차 알아가면 되는 거겠지. 오늘도 꽃 놓고 간 거지? 누군지는 몰라도 너한테 알아달라고 난리를 치고 있잖아.”

 

   사와무라의 말에 스가와라는 카드를 들어 그의 눈앞에 내밀었다.

 

   “이거 봐. 5년 전이래. 자그마치 5. 카페 개업했을 때야. 그런데 왜 이제서야 이런 일을 하냔 말이야.”

   “그건 나도 모르지. 거창한 이유 같은 거 아닐 수도 있어. 행동하게 되는 데에 항상 크고 엄청나게 그럴듯한 이유만 필요한 건 아니잖아.”

   “예를 들어?”

   “. 네가 너무 좋아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던가.”

   “됐네요. 이젠 그런 로맨틱한 거 안 먹혀. 너무 많이 데었다고.”

 

   아픈 데를 맞은 얼굴을 하는 것에 사와무라는 꽤 식은 커피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로를 하자니 출근 시간이 다가오기도하고 사와무라는 사실 제 친구를 조금 강하게 키워보자고 마음먹은 참이기도 했다. 일은 적당히 하고 농땡이는 많이 피우라고 말하면서 손을 흔드는 제 친구는 그렇게 사회생활을 하고 나이를 먹으면서도 천진한 면이 있었다. 운명적인 로맨스를 꿈꾸는 이에게 꽃을 가져다 바치는 건 꽤 먹혀들만 한 작전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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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이 닫히는 소리에 스가와라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다이치는 이 일을 재미있는 하나의 해프닝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스가와라는 영 그렇질 못했다. 적어도 그에겐 좋아한다던가, 사랑한다는 단어는 무게가 꽤 나가는 것이었다. 게다가 오늘 그 기한까지 알게 되어버렸으니. 5. 그러니까 일로 치면 아마도.... 스가와라는 생각하는 것을 관두고 다시 깊게 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누군지는 알아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고 스가와라는 생각했다. 누구인지, 딱 그 정도만. 그런데 알고 나면?

 

   “. 머리야.”

   “머리가 아파요?”

 

   훅 치고 들어온 목소리에 스가와라는 순간 어깨를 움츠리며 굳어버렸다. 뻣뻣하게 굳은 채로 고개를 돌려 보니 걱정스러운 표정을 한 아카아시가 서 있었다.

 

   “세상에. 오셨으면 기척이라도 좀 내셔야죠.”

   “죄송해요. 그 표정이 별로 안 좋으시길래 요란하게 들어오기도 좀 그래서. 무슨 일 있어요?”

   “별 일 아니예요. 늘 드시던 거죠? , 오늘은 그 꽃다발 없어요. 테이블 쓰실 수 있는데.”

   “그간엔 마감 때문에 바빴던 거라 여기까지 가져온 거였어요. 어제 넘겨서 쓸 필요가 없긴한데... 스가와라 씨 말동무가 필요한 거라면 앉고요.”

   “기념으로 드릴만한 게 없는데 어떡하죠. 어제까지 팔다 남은 케이크가 있는데 괜찮을까요?”

 

   뭐든 감사하게 먹겠다는 아카아시의 말에 스가와라는 언제나와 같은 메뉴를 만들고 깨끗이 씻어 널어놓은 그릇에 케이크 한 조각을 담았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아침공기가 들어 스가와라는 전과는 달리 기분좋게 숨을 들이쉬었다.

 

   “, 스가와라 씨.”

   “?”

   “영화 좋아하세요?”

   “영화요? 좋아하긴 하죠. 시간이 없어서 본 지는 꽤 됐지만... 왜요?”

   “시사회 티켓이 생겨서요. 별 일 없으시면 같이 가는 건 어떨까 하고.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진 마시구요.”

 

   스가와라는 고개를 돌려 의자에 앉아 이쪽을 보고 있는 아카아시와 눈을 맞췄다. 턱을 괸 채로 앉아있던 아카아시는 스가와라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조금 틀며 웃는 것으로 답했다.

 

   “무슨 시사회예요?”

   “이번에 각본에 참여한 영화가 있는데 제작사 측에서 몇 개 주더라고요.”

   “원래 소설 쓰시던 거 아니었어요? 영화 각본 얘기는 처음 듣는 거 같은데.”

   “소설만 쓰고 밥 벌어먹기 힘드니까요. 가끔 다른 일도 받아 하고... 그런 거죠.”

   “말씀은 감사한데... 제가 그런 데 가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요. 전 뭐 아카아시 씨처럼 관계자도 아니고.”

   “제가 감사해서 그래요. 항상 멋진 커피에 서비스까지 해주시니까. 답례 같은 거라고 생각해주세요.”

   “날짜는요?”

   “다다음 주 토요일이요. 괜찮으세요?”

   “조금 생각해보고 말씀드려도 될까요? 아직 일정이 어떻게 될지를 잘 모르겠어서요.”

   “물론이죠. 정해지면 편하게 말씀하세요.”

 

   아카아시에게 휘핑크림을 담뿍 담은 프라푸치노와 베리를 올린 타르트를 트레이에 담아 건넨 스가와라는 카운터에 고개를 빼고 앉아 천천히 입을 떼었다. 아카아시는 시원하게 프라푸치노를 빨아올리곤 타르트에 집중했지만 그런 스가와라의 말에 답하는 것을 소홀히 하진 않았다.

 

   “저도 한 때는 문학가를 꿈꿨었죠. 재능의 한계 때문에 그만두긴 했지만... 당장 대학에 가야하는데 잘 쓰지도 못하는 글만 끄적이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그때 저한텐 문학보단 대학에 낼 에세이가 더 중요했으니까요.”

   “다들 그렇죠. 저도 처음 이쪽에 발 들였을 땐 눈앞이 깜깜했었으니까.”

   “내 생각에 아카아시 씨는 배우나 아이돌 같은 걸 했어도 성공했을 거 같아요. 그런 일 없었어요? 막 쟈니스에 주변사람이 사진 보내고 그런 거.”

   “절 곤란하게 하시네요.”

 

   난처한 표정을 한 아카아시를 보는 것을 즐거운 일이었으나 그 웃음이 썩 오래가진 못했다. 스가와라는 작게 한숨을 내쉬곤 말을 이었다.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는데 결국 지금은 이 손바닥만 한 카페 주인이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 걸 그랬어요.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저 꽤 재능 있었는데. 저 에세이로는 떨어진 대학이 하나도 없었어요.”

   “스가와라 씨는 어느 학교 다녔다고 하셨죠?”

   “저 그냥 지방에 있는 대학 나왔어요.”

   “어느 지역?”

   “교토에 있는 국립대라고 말하면 아시려나?”

   “스가와라 씨, 공부 진짜 잘하셨나보네요.”

   “과거의 영광이죠. 지금은 뭐.”

 

   스가와라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아카아시는 시계를 확인하곤 내일 또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가게를 나섰다. 테이블에 흘린 것도 없이 의자를 제자리에 넣고 나가는 아카아시를 보며 스가와라는 그가 참 예의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영화 시사회라. 평소 같았다면 말이 나오자마자 가겠다며 덥석 물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그래. 물론 좋은 사람이지. 좋은 사람이지만...... 손님들을 자꾸 그런 쪽으로만 생각하게 되어 큰일이라고 스가와라는 생각했다. 하루 빨리 범인을 잡아내야겠다고 생각하던 와중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 스가와라 씨.”

   “안녕하세요. 괜히 오랜만에 보는 것 같고 그러네요.”

   “어제 하루 안 온 건데요. . 듣자하니 어제 대단했다던데.”

   “어떻게 알았어요?”

   “친구가 말해줬죠. 어제 왔다 갔잖아요.”

 

   아아. 그 같은 회사의... 스가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미치겠어요. 누군지 알 수가 있어야죠.”

   “CCTV는요?”

   “외부엔 없어요. 거긴 뭐 훔쳐갈 만 한 게 없으니까 안 달았거든요...”

   “. 짚이는 사람은?”

   “마츠카와 씨. 단언컨대 근 일 년 간 저한테 연애감정 같은 걸 내비친 사람은 정말 단 한 사람도 없었어요. 그런데 이거 보라구요.”

 

   스가와라는 카드 뒷면의 메세지를 그에게 보여줬다. 마츠카와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고개를 숙여 카드의 메세지를 눈에 담았다.

 

   “5년 전이래요. 그러니까 제 말은 너무 오래됐다는 거예요. 5년씩이나! 아무 말도 않고! 조용히 있다가! 왜 하필 지금! 자기를 드러내지 못해 안달이냐 이거죠.”

   “5년 간 참았는데 이제 스가와라 씨를 너무 좋아하게 되어서 못 견디게 됐나보죠.”

   “꼭 누구랑 비슷한 말을 하시네요.”

   “그래요?”

   “. 있어요. 제 친구인데... 비슷한 말을 오늘 아침에 하고 갔어서.”

 

   늘 하시던 거로? 스가와라의 질문에 마츠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여섯 잔. 전부 아이스로요. 네네. 전부 아이스로.

 

   “확실히 날이 따듯해지긴 했죠. 아이스가 많이 나가요. 하루 종일 기계를 켜놔야 할 정도니까.”

   “오후 쯤 되면 더우니까요. 이제.”

   “그렇죠. 봄인데 어디 놀러가고 그런 계획은 없으신가.”

   “아는 사람들끼리 왜 이래요. 샐러리맨이 쉴 시간이 어디 있다고.”

   “너무 슬프잖아요. 그거.”

   “현실인걸요.”

 

   종이 트레이에 담은 커피를 먼저 건네고 더 큰 사이즈의 커피를 내밀며 스가와라는 비밀이라도 말하듯 마츠카와에게 속삭였다. 오늘은 특별히 투샷 추가예요. 손님. 마찬가지로 작은 목소리로 고맙다고 말하는 것에 둘 다 웃음이 터져버렸다. 일 열심히 하라는 말로 배웅하며 스가와라는 손을 흔들었다. 밀린 설거지를 하고 미지근한 물에 우린 차를 반쯤 마셨을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스가와라는 들고 있던 컵을 옆으로 밀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어서요세요. ... 오이카와 씨.”

   “안녕하세요. 이름 기억하고 계시네요.”

   “저 기억력이 꽤 좋아서요. 진짜 오늘도 오셨네요.”

   “스가와라 씨 말을 믿어보려고요. 이 근처에 이만한 카페가 없다면서요.”

   “저 거짓말은 못하는 성격이라. 오늘은 어떤 거로 하실래요?”

   “다 맛있다고 하셨으니까... 스가와라 씨가 좋아하는 거로 주시겠어요?”

   “단 거 좋아하세요?”

 

   없어서 못 먹죠. 능청스런 답에 스가와라는 일단 바닐라 시럽을 컵에 부었다. 달고 시원한 건 정신건강에 좋은 법이니까. 냉장고에서 꺼낸 우유를 탈탈 털어 넣으며 스가와라는 커피액과 우유가 섞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홀더를 끼운 잔을 내밀자 오이카와는 그 자리에서 바로 라떼를 마셨다. 티비에서나 보던 커피광고 같은 모습에 스가와라는 오 하는 감탄사를 밖으로 낼 뻔했다.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것에 스가와라 한 마찬가지로 엄지를 들어 올렸다.

 

   “이사 온지 얼마 안 됐다고 하셨죠. 지낼 만 해요?”

   “그런 거 같아요. 이렇게 좋은 카페도 알게 되고.”

   “과찬이시네. 저기 골목 끝에 있는 식당 가보셨어요? 진짜 괜찮아요. 메뉴도 많고 사장님도 친절하시고. 밤늦게까지 열어서 혼자 한 잔 하기에도 괜찮구요.”

   “스가와라 씨 추천이라면 믿을 만 하네요. 시간 날 때 같이 갈래요?”

   “같이요?”

   “. 같이.”

   “. 이거 혹시 데이트 신청이신가?”

   “들켰나요?”

 

   스가와라는 눈가를 조금 찌푸린 채로 눈앞에 선 오이카와를 바라보다가 카운터 안쪽에 비스듬히 세워놓은 꽃다발로 눈을 옮겼다.

 

   “장미꽃도 오이카와 씨가 가져다 놓은 거예요?”

   “아뇨. 그건 아닌데...”

 

   오이카와는 말꼬리를 느리게 끌고는 카운터 쪽으로 상체를 숙여 말을 이었다.

 

   “꽃다발 덕에 행동을 빨리하게 된 건 있죠. 스가와라 씨는 인기가 많은 것 같으니까.”

   “제가요?”

   “그게 증거잖아요.”

 

   턱짓으로 작은 꽃다발을 가리키며 오이카와가 말했다. 스가와라는 어떤 말을 해야할지 감도 잡히지 않아 눈을 굴리다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정확히는 떼려고 했었다.

 

   “안녕. 스가와라 씨. 오늘도 뭐 대단한 게 있나?”

 

   쿠로오의 등장으로 말할 타이밍을 놓쳐버렸지만. 매일 보던 얼굴이지만 평소처럼 반길 수가 없어서 스가와라는 손을 몇 번 흔들고 어색하게 웃어버렸다. 그런 스가와라의 웃음을 쿠로오와 오이카와가 눈에 담았음은 물론이었다.






55회차 오이스가 전력




   스가와라는 미야기 출신이라고 했다. 태어나서 고등학생 때까지 거기서 자란 완전 토박이라고. 센다이 시에서 살았냐 물으니 네가 들으면 이름도 잘 모를 동네라고 했다. 센다이와는 조금 떨어져있다는 말에 너는 그냥 고개를 끄덕여버리고 말았다. 외지 사람이, 그것도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던 젊은 사람이 홋카이도 구석의 동네까지 흘러들어온 배후를 짐작하는 건 사실 많은 상상력을 요하는 일은 아니었다. 정확히 알지는 못해도 물어서는 안되는 것임엔 확실했다. 추위를 퍽 타는지 히터 가까이에 앉아 떡을 먹는 모습에는 수심이랄 것은 없었다. 다만 눈이 조금 가라앉아서 너는 눈을 치우러 간다는 말을 남기고 문을 닫았다. 눈을 치우러 간다는 말은 핑계였고 스가와라도 아마 눈치 챘을 것이다. 이 동네의 눈은 치운다고 해결 될 만 한 것이 아니었다.

   스가와라는 막 겨울이 시작되는 즈음에 이 곳으로 흘러들어왔다. 도쿄의 지번을 달고 걸려온 전화를 너는 받을지 말지 고민했었고 대출 권고라면 끊어버리면 된다는 생각에 수화기를 들었다. 스가와라는 오년 전 쯤 대형 민박 사이트에 올려두었던, 너조차도 잊은 글을 보고 연락하게 되었다고 나긋한 투로 말했었다. 올려두었던 방이 이젠 창고로 쓰이고 있다는 말에 그러냐며 답하는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어서 너는 그에게 언제쯤 올 것인지를 물었다. 9월쯤이라고 말해서 최대한 방을 치워두겠다 말하니 금새 톤이 올라갔다. 장기 숙박이 가능하냐는 물음에 너는 얼마나 묵을 것인지를 물었고 스가와라는 모른다고 답했다. 모른다고요? . 얼마나 머무를 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비용은 잘 드릴 수 있으니까... 스가와라는 퍽 절박하게 말했다. 수화기를 든 손에 힘을 얼마나 주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너는 오기 일주일 전에 다시 연락을 달라 말했고 스가와라는 그러겠다고 말했다.

   먼지가 자욱하게 앉은 창고 방에선 옛것들의 냄새가 났다. 너는 그것들을 다시 정리하며 스가와라를 떠올렸다. 남자치고 조금 높고 가느다란 목소리. 얼굴도 꼭 그럴 것 같다고 생각했고 그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고 너는 데리러 가겠다고 답했다. 스가와라는 괜찮다 말했지만 집 근처까지 들어오는 버스가 없다는 말에는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못했다. 터미널의 많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 너는 단번에 스가와라를 찾아냈었다. 애초에 커다란 가방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사람이 그뿐이기도 했거니와 스가와라라고 성을 알려준다면 열에 아홉은 그를 찾아낼 수 있었을 거라고 너는 생각했다.

   트렁크에 빼곡하게 짐을 싣고 집으로 가는 길에 너와 스가와라 사이에서 많은 대화가 오가진 않았다. 이미 알고 있지만 정식으로 통성명을 하고 지나가는 풍경들 중 몇 가지를 그에게 설명해주는 게 다였다. 어쩌다 이런 데로 오게 되었냐는 너의 물음에 스가와라는 작게 웃고는 극렬한 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극렬한 곳이요? . 극렬한 곳. 아주 아주 춥거나, 아주 아주 더워서 날씨 말고는 아무 것도 떠올릴 수 없는 그런 곳으로 오고 싶었어요. 너는 스가와라에게 적당한 곳을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긴 겨울에 정말 추워요. 히터 세 대를 하루 종일 돌려도 발이 시려운 날도 있어요. 지금은 겨울 초입이라 그 정도는 아니지만. 슬슬 눈이 올 때가 되었는데. 터미널에서 집까지는 차를 타고 20여 분이 걸린다. 온통 밭이 펼쳐진 풍경을 스가와라는 가만히 바라만보고 있었다. 너는 안경을 고쳐 올리며 정면에 집중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슈퍼마켓을 지나칠 쯤 눈이 내렸고 너와 스가와라는 첫눈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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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가와라는 조용한 장난꾸러기였다. 단어 간의 괴리감이 들긴 해도 정말 그대로였다. 귀여운 새우가 프린팅 된 티셔츠를 입고 다녔고 옆집의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을 즐겨서 작은 동네에서 그의 평판은 순식간에 좋아졌다. 2층의 작은 방에 살기 시작한 후로 너와 스가와라는 세끼 중 한끼를 무조건 같이했다. 그가 내건 일종의 조건이었다. 스가와라는 두부를 이용한 요리의 전반에 능통했고 너는 덕분에 꽤 많은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차를 타고 오던 날 말했던 아주 아주 추운 겨울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가장 최근에 산 성능 좋은 히터를 2층 방에 주었음에도 스가와라는 며칠 후 시내에서 히터를 하나 더 사왔다. 딱 그정도로 춥고 시렸다. 스가와라는 시리다는 말로 날씨를 표현했다. 너는 시리다는 말에 굳이 의문을 표하지 않았고 그는 흰 손 위로 입김을 뿜었다. 눈이 가시질 않는 풍경도, 그도, 입김도 모두 하얀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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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일이 일어난 건 거실의 코타츠 위 야스나리의 소설책이 익숙해질 쯤이었다. 저녁부터 눈발이 심하게 날렸고 너는 창문을 더 단단히 여몄다. 스가와라는 내일 아침 현관문을 열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내기를 걸었고 두 사람 모두 없다에 걸었으므로 내기는 성사되지 않았다. 기름칠을 제때 하지 못한 현관의 미닫이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은 것은 새벽 네 시 쯤이었다. 너는 잠결에 일어나 현관 쪽으로 발을 옮겼고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 문가로 다가서니 눈 위로 발자국이 찍혀 있었고 고개를 드니 저 앞에 익숙한 색의 머리카락이 보였다. 그는 얇은 잠옷차림인 채로 눈밭 한가운데를 걷고 있었고 너는 급하게 슬리퍼를 꿰어 신고 그에게로 달려갔다. 발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눈이 차가웠다. 너는 스가와라의 어깨를 잡아챘고 그는 울고 있었다. 잡고 있는 어깨가 차가워서, 항상 희던 얼굴이 새빨개져 있어서 너는 그의 손을 붙잡고 집으로 달렸다. 그는 네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거실의 불을 켜고 마른 수건으로 눈을 털고 네 방에 두었던 히터까지 끌고와 전원을 켤 때까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에서 가장 두꺼운 이불을 둘러주고 급하게 끓여온 차를 손에 쥐어줄 때가 되어서야 그는 너의 이름을 불렀다.

   유키 상. 그건 너의 이름이었다. 너는 대답했다. 스가와라는 손에 쥔 찻잔을 내려다보며 입을 떼었다. 아프다는 건 좋아했다는 뜻이에요. 좋아했던 것들만이 나를 진정으로 아프게 할 수 있어요. 아픈 건 쉽게 가시지 않아서 언제라도 나를 할퀴고 가슴을 쥐어뜯게 할 수 있어요. 나는 그저 아파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아프다는 건, 사랑했다는 말의 동의어예요.

   대답해줄 수가 없어서 너는 스가와라를 두고 거실에서 빠져나왔다. 문을 닫고 네 방으로 가 다시 자리에 누웠다. 발가락이 시렸다. 그날 밤, 너는 스가와라의 울음소리에 날이 밝을 때까지 잠을 설쳤다. 너는 정말 대강 스가와라가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를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시려서겠지, 라고. 차가워지지 않는 마음이 야속해서 시리기만 해서 자신의 온도와 맞는 곳을 찾아왔는지도 모르겠다고 여겼다. 그 날 이후로 스가와라는 한 번도 눈밭으로 뛰쳐나가지 않았다. 여전히 평판이 좋은 청년이었고 잘 놀아주는 형이자 오빠였다. 다만 그 안에는 왜인지 모를 기시감 같은 것이 있어서 너와 마을 사람들은 스가와라를 당연하게 외지인이라고 여겼다. 그는 홀연히 왔던 것처럼 홀연히 사라질 것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여겼고 스가와라 또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에겐 낡고 두꺼운 외투가 없었고 몇 년 간을 눈에 담금질해온 신발도 없었으며 그의 이름으로 날아드는 고지서조차 없었다. 스가와라는 그곳에 있었음에도 어디에도 그의 이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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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와 스가와라는 그렇게 매서웠던 겨울을 보내고 봄을 스쳐 지났고 여름을 맞았다. 작게 생일을 축하했고 그날 저녁은 아주 매운 마파두부였다. 너는 큰 물통을 두 번이나 비웠고 스가와라는 네 컵에 물을 채워주는 역할이었다. 8월의 그는 조금 우울했다. 햇빛이 작열하는 만큼 시들어간다고 생각했다.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보고 있는 시간이 늘었고 잠을 많이 잤다. 너는 그런 스가와라를 지적하지 않았고 그는 그런 네게 퍽 감사해하는 눈치였다. 길었던 여름이 지나고 얇은 겉옷을 걸쳐야하는 때가 왔다. 그는 조금 밝아진 듯 보였고 너는 어떠한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울한 것 보단 웃는 얼굴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너는 그를 위해 매운 컵라면을 샀다. 유제품 코너는 가뿐히 지나쳤다. 그는 매운 것을 먹을 때 우유를 찾지 않았고 또 그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면 영 묘한 표정을 지었다. 옆 집 부부에게서 받은 우유크림이 들어간 빵을 보고 스가와라는 그것을 싫어한다 말했다. 감정 표현이 격하지 않은 그가 그런 말을 할 정도니 얼마나 싫어하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괜히 실수를 범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너는 스가와라의 앞에선 빵이라던가, 우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마트 상호가 찍힌 비닐봉투를 들고 우체통을 열었다. 저번 달 전기세 고지서가 있었고 온통 하얀 편지가 하나 있었다. 스가와라의 앞으로 되어 있었고 보낸 사람은 적혀있지 않았다. 미야기 현의 우체국에서 보냈다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너는 괜히 침을 삼켰다.

   현관문을 열자 스가와라가 너를 반겼다. 그는 오늘 식사당번이었다. 너는 신발을 벗고 그가 좋아하는 컵라면과 편지를 함께 건넸다. 다 당신 것이라는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오늘 식사는 혼자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말하곤 2층으로 올라갔다. 그가 차려놓은 저녁을 먹으면서 너는 텔레비전 소리를 높이 키웠다. 고슬고슬한 밥이 맛있었고 알맞게 구운 생선의 간이 적당했으므로 평화로운 저녁식사에 어울리지 않는 울음소리는 듣지 않는 것이 좋았다. 텔레비전 속 코미디언은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했고 위층에선 간간히 앓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너는 프로그램이 모두 끝나고 다음 시간대의 재미없는 드라마가 시작할 때까지 볼륨을 줄이지 않았다.

   다음 날 일어난 너는 스가와라를 가장 먼저 찾았다. 이름을 불렀으나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고 방문에 노크를 했으나 마찬가지였다. 너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고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방엔 나와 있는 것들이 거의 없었다. 곱게 개어진 이불이나 벽에 걸린 외투 정도가 사람 사는 곳이라는 인상을 주는 정도였다. 너는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고 작은 책상 위에서 어제의 그 흰 봉투를 보았다. 너는 무언가 목구멍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침을 삼키고 편지를 들었다. 깨끗하게 윗부분이 절취되어 있었다. 엄지와 검지로 안의 종이를 든 너는 느릿하게 접힌 면을 펴냈다. 스가와라에게라던가 코우시에게 같은 글자는 보이지 않았다.

 


잘 지내? 여전히 예쁘고?


 

   끝의 물음표는 동그랗게 번져 있었다. 너는 그것이 스가와라의 눈물인지 시린 그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차마 그 다음 줄로 눈을 옮길 수는 없었다. 엄마의 화장대 위 빨간 립스틱을 건드린 것만 같은 느낌에 너는 급히 종이를 접어 봉투 안에 넣고 방을 나섰다. 계단을 급하게 내려오던 중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스가와라와 눈이 마주쳤고 어디에 갔었냐는 물음을 먼저 던졌다. 그는 마트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고 너는 어서 아침을 먹자고 했다. 그릇들을 씻던 중 너는 그것들을 장 안에 넣어야 하는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스가와라가 내내 시려할 것인지 아닌지가 관건이었고 너는 후자라고 생각했다. 정확히 일주일 뒤 스가와라는 그동안 고마웠다는 말을 했고 너 또한 같은 말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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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가는 길은 왔던 길과 같았다. 너는 운전석에, 스가와라는 조수석에. 트렁크에 짐 가방이 가득했고 터미널은 언제나와 같이 낡아있었다. 버스에 탄 스가와라에게 손을 흔들었고 그는 창문에 대고 입김을 불더니 그 위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고마워요. 너는 입모양으로 괜찮다고 대답했다. 버스가 떠났고 너는 점이 될 때까지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고 스가와라가 어디 갔냐 묻는 옆집 부부에게 그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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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슥이 아닌 것 같긴한데... 뭔가 오이카와가 크게 드러나지 않는 글로 완성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스가의 마음 속엔 항상 있지만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인물로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꽤 오랫동안 앓은 병이에요. 적어도 제 인생에서는 가장 길어요. 여섯 살 때인가, 그때 유행하던 독감에 걸려 일주일을 꼬박 앓은 게 전까지는 가장 긴 기록이니까 진작 경신했다고 봐야죠. 처음엔, , 뭐였더라, 그래 양치질을 할 때였던 거 같아요. 아직 잠도 다 깨지 않은 상태에서 양치질을 하는데 혓바닥을 이렇게 쓸고서 거품을 뱉으려는데 갑자기 뭐가 목구멍에서부터 올라오는 게 느껴졌어요. 혀를 너무 열심히 쓸어서 그런가 했는데 눈을 떠보니까 웬 꽃잎이 흩어져 있는 거예요. 깜짝 놀랐죠. 소리를 안 지른 게 다행이에요. 치약 거품 사이로 꽃잎이 보이는 게 너무 비현실적이라 한참 동안을 서있었어요. 이게 뭔가 싶어서. 설마 내가 이렇게 되리라곤 생각 못했죠.

   네. 이런 병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저 고등학생이라구요. 이런 병에 걸릴만 한 사람들이 가장 많은 곳 아닐까요. 아뇨. 그 애는 같은 학교는 아니에요. 타 지역은 아니구요. 그런데 좀 떨어져 있어서... 미야기는 크잖아요. 전 아오바 구에 있는 학교고 그 애는 조금 더 멀리에 있어요. 아뇨. 딱히 그래서 볼 일이 없는 건 아니고... 사실 접점이 많지는 않아요. 저 배구부라고 말씀드렸던가요. . 저 배구부예요. 초등학교 때부터 했으니까 꽤 오래했죠. 그 애도 배구를 하고요. 딱 아셨네요. 상대팀으로 만났어요. 처음엔 이겼는데 나중엔 졌네요. 뭐 그렇게 됐어요. 아 그렇다고 제가 막 져서 걔를 좋아하게 됐다던가, 나에게 패배를 안긴 거 니가 처음이야 이런 건 절대 아니에요. 웃지 마시구요. 저 진짜 진지하다구요. 사실 저 첫눈에 반했다던가 그런 걸 믿는 사람은 절대 아니었는데... 그것도 뭐 그렇게 됐네요. 사실 나에게 일어나는 일 중에 예측할 수 있는 게 몇이나 되겠어요. 너무 애늙은이 같았나. 그 애도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불시에 찾아온 손님 같은 거죠. 금방 나가겠지 싶어서 내버려뒀는데 아예 자리를 잡아버린 거 같아요. 그래서 선생님을 찾아온 거고요.

   병원에 갔는데 치료법이 없다는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상담소를 찾아가라고 하기에 온 거예요. 왜 처음부터 병원에 안 갔냐고요? 저 남고생이에요. 그것도 아주 감수성 예민한.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게 만천하에 알려지는 거 영 부끄럽다고 해야 할까요. 생각보다 막 불쑥 튀어나오고 그렇지 않더라고요. 학교에선 뭐 공부하고 그러느라, 배구할 땐 그것만 생각하니까요. 가끔씩 막 올라오는 느낌이 들 때도 있긴 했는데 어떻게 잘 넘겼어요. 화장실로 막 달려가면 친구들이 급한 거 마렵냐고 놀리긴 했는데 그 정도야 뭐. 저도 하니까요. 그래도 밤에 자려고 누우면 자꾸 생각이 나서 막 급하게 화장실로 가고 그랬죠. 부모님이 걱정하시긴 했는데 적당히 둘러댔어요. 꿈에서도 여러 번 봤어요. 그래도 꿈속에선 꽃을 토한다거나 그러진 않더라고요. 덕분에 꼴사나운 모습 보이는 건 면할 수 있었죠. 뭐 꿈이긴 하지만.

   걔요? . 예뻐요. 제가 좋아해서가 아니라 진짜로. 선생님이 보셔도 예쁘다고 할 거예요. 잘생겼고 예쁘고 그래요. 그래도 예쁘다는 말에 더 어울리지 않나 하고 생각해요. 전 예쁘다는 말이 더 좋더라고요. 더 애틋하다고 해야 하나. 잘생겼다는 말은 너무 품평하는 것 같아서. 싫진 않지만 대충 느낌이 그렇다는 거죠. 전 그래서 그 애 얘기를 할 땐 항상 예쁜 애라고 말해요. 저한테 걘 예쁜 애니까. 여기, 눈가에 점이 있는데 그게 좋아요. 어떻게 있어도 딱 거기에 있는지. 웃을 때마다 그게 미묘하게 같이 움직이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움직임에 제가 반하지 않았나 싶어요. 절 위해서였던 적은 없지만. 좋아한다는 게 무조건 쌍방인 건 아니잖아요. 애초에 그랬으면 제가 이런 병에 걸려서 선생님한테 구구절절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었겠죠.

   고백은 글쎄요. 조심스러워요. 그래서 내내 혼자 앓았죠. 짝사랑이 끝나야만 치료되는 거라고 들었는데 쌍방은커녕 걔가 절 제대로 기억이나 할지 모르겠어요. 이름도 모를지도. 제 후배의 중학교 선배나 그 학교 배구부 주장 정도의 기억 아닐까요. 그런 애한테 다짜고짜 찾아가서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 좀 웃기는 일이라는 거죠. 착하니까 면전에 대고 한번 시원하게 토하면 제가 불쌍해서라도 어떻게 해줄 것 같긴 한데... 강요는 싫어요. 저 때문에 괴로워진다거나 마음 쓰는 거 바라지 않으니까. 그래도 내내 혼자 앓기만 하는 건 적성에 안 맞아요. 조금 친해져보려고요. 어떤 방법일진 아직 모르겠지만 저 한번 마음먹으면 하는 사람이에요. 그런 것 같다고요? 칭찬으로 들을게요. 학교도 다르고 시도 달라서 애초에 어떻게 찾아갈 구실을 만들까도 걱정이에요. 역시 후배가 잘 지내고 있는지 보러왔다는 게 그나마 나을까요. . 시간이 벌써 다 된 거예요? 빠르네요. 몇 번이나 더 찾아올지는 모르겠어요. 상담이라는 거 꽤 좋은 것 같긴 한데. 아마도 다음번에 찾아올 땐 좀 진전이 있을 때 아닐까요. 선생님은 절 응원해주셔야 해요. 제가 이런 병에 걸린 걸 아는 유일한 사람이시라구요. 좀 부담이 되나요? . 제 얘기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많이 정리가 된 거 같아요. 전 이제 그 애를 어떻게 좋아해야할지를 고민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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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퀘박스에 보내주신 하나하키 오슥을 주제로 써본 연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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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올린 글과 너무 비슷한가 하면서도... 요새는 이렇게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게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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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 안이 너무 답답해서 환기를 하려고 창문을 열었는데 달이 보이더라고요. 꽉 찬 보름달에 심지어 푸른빛마저 돌아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뻔했어요. 언제나 이래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불쑥. 어디에서나 당신이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얼마 전 본가에 가 벽장에 넣을 것들을 골라내고 있는데 그 책이 보이는 거예요. 그 시집이요. 고등학교에 다닐 때 가장 많이 읽었던, 책등이 다 까지고 날개 접히는 부분이 닳아버린 책이 보여서 그 자리에 앉아 꽤 오랫동안 울었어요. 같이 봤었으니까. 이런 것도 읽으냐고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으니까. 그 안에 우리가 있었으니까. 우리, 가 좋았어요. 당신과 나를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설레어서 몇 번이고 침대에서 뒤척였어요. 천장이 온통 당신이어서 잠을 못잔 적도 있어요. 어린 취급 할까봐 말은 하지 못했지만.

   혹시라도 누군가가 지금까지의 내 삶 중 가장 극렬했던 계절을 물어본다면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여름과 겨울을 말할 거예요. 우리가 되었고 서서히 우리가 아니게 된 계절. 추워질수록, 옷이 두꺼워질수록 그 안에 숨어드는 느낌이었다고 말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요? 서서히 멀어져가서, 그게 내 생각보다도 너무 빨라서 늦은 가을쯤엔 다른 의미로 잠을 설쳤어요.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나. 당신을 실망시킨 일을 했나 싶어서. 어떠한 일의 원인을 무조건 내게서 찾는 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지적받아온 것이긴 하지만 습관 같은 거라 쉽게 저버릴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우리 사이의 일도,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먼저 생각했고 아직도 그러니까. 또 그렇지 않으면 너무 슬퍼지니까요. 식어버린다는 건 이유가 없다는 데에서 필연적으로 슬퍼지니까. 아픈 거예요. 겨울 내내 앓았어요. 꿈속에서도 내내 아파서 소리도 못 내고 울었어요. 몸을 일으킬 수 있게 되자마자 미야기로 갔는데 당신 얼굴도 못보고 돌아왔고. 예상은 했었어요. 그래도 아프지 않은 건 아니라 돌아가는 기차에서도 계속 볼을 문질렀어요. 집으로 돌아와서 시집을 버리려고 했는데 그러지도 못했어요. 그 단어들과 행간 사이에 우리의 시간이 있었으니까.

   당신 혼자 어른이 되어가는 준비를 하는 것 같아서, 그 안에 내가 끼지 못하는 것 같아 슬퍼했어요. 애초에 대학에 갔다는 것도 몇 다리를 건너서야 들을 수 있었으니까. 이름 들으면 알만 한 학교에 가서 그때부터 나도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늘었어요. 최소한 부족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당신은 어른이 되었고 나는 아직도 고등학생이란 이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혹여 나중이라도 다시 만난다면 그때만큼은 동등해야하니까. 다가가지 못하면 안되잖아요. 고대해 온 순간일 텐데. 나는 당신과 비교해 언제라도 모자를 수밖에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이라도 그 폭을 좁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도쿄의 사립 대학교. 이정도면 열심히 노력했다고 한번쯤 웃어줄 수는 있지 않나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전혀 연고도, 관심도 없던 장소가 소중해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어요? 나에게 미야기가 그랬어요. 도쿄에서 미야기까지 그 짧지 않은 거리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가는 내내 잠 한숨 자지 않았어요. 기차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들도 내겐 당신의 일부이니까. 부쩍 맑아진 공기도 당신을 닮아서 난 그 풍경을 사랑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가장 사랑했던 건 단연 달이었어요. 그 공원 벤치에 앉아서 함께 올려다봤던 푸른 달. 단 한 순간을 박제해서 간직할 수 있다면 나는 그 순간을 택할 거예요. 여름이었지만 바람이 불어 조금 추웠고 그래서 체온이 더 선연하게 느껴졌던 감각을 아직도 기억해요.

   마음 한켠을 내어준다는 건 어떤 파급이 올지라도 감내해야한다는 계약에 동의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어요. 반년이 넘는 시간을 꼬박 앓고 있다는 데에서 느낄 수 있으니까. 약을 내게서 찾을 수 있기는 할까요. 우리의 관계에 있어 언제나 무언가를 쥐고 있는 사람은 당신이었는데. 물론 나조차도. 그리고 나는 기꺼이 내던졌고요. 불나방을 알죠? 타들어갈 것을 알면서도 자기 몸을 스스로 이끌어 내던져버리는. 나는 불은 아니고... 그 달이었다고 봐요. 나를 내던진 곳이. 타버리는 게 아니라 아주 천천히 얼려졌다고, 그렇게 생각해요. 이제는 어떤 것에도 전처럼 열정적일 수 없으니까. 짧은 시간에 너무 쏟아부어버린 걸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후회는 없으니까 그것만큼은 괜찮은 거 아닐까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 해도 나는 그 여름 합숙에 참가할 거고 당신한테 말을 걸고 뻔뻔하게 번호를 알아갈 거예요. 의미 없는 체를 하면서 안부를 묻고 메일을 보내다가 전화를 할 거예요. 이미 표를 예매했으면서 찾아가도 되냐는 물음을 던질 거고 기차 안에서 내내 웃으면서 당신 생각만 할 거예요. 잘 먹지도 못하는 매운 음식을 먹고 그런 나를 보면서 웃는 당신을 바라볼 거예요. 텅 빈 공원에서 같이 달을 보고 고개를 든 당신의 눈 옆 점을 사랑할래요. . 난 그럴래요.


   창문을 꽤 오래 열어뒀는데도 춥지 않네요.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는 증거겠죠. 요즘 들어 창밖이 자주 소란스러운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거예요. 여름은 소란스러우니까요. 가끔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창문은 조금 이따가 닫아도 되겠어요. 바람이 차지 않아서도 있지만 저런 달을 등질 순 없잖아요. . 이번 주에 본가에 내려가면 그 시집을 가져올까봐요. 여름이니까요. 단어 사이사이를 샅샅이 털어볼 생각이에요. . 방송을 하려나봐요. 벨이 울렸어요. 오늘은 점호가 없는데. 누굴 찾나본데요. . 절 찾네요. 1층 로비에서 누가 기다리고 있다고. 온다는 연락을 받은 일이 없는데 누구일까요. 깜짝이라던가 그런 건 썩 달갑지 않은데. 보쿠토 선배가 와세다 대학교 마크가 찍힌 옷을 입고 기숙사 앞까지 왔었다는 거 혹시 알고 있을까요? 그래도 기다리고 있다니 가봐야겠죠. 창문은 다녀온 후에 닫아야겠어요. 그때쯤이면 방 안이 온통 달빛 범벅일 테니까. 그 정도라면 꿈에서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보고 싶네요. 오늘따라 더. 아주, 많이 보고 싶어요.

 

 

 

 

 

 

 




   응. 난 지금 도쿄에 있어. 매번 느끼는 거지만 미야기랑 도쿄는 정말 너무 멀어. 도착하고 난 다음에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할 걸 각오해야하니까. 그런데 왜 지금 호텔방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너는 굳이 그럴 사람은 아니지만, 오늘 달이 너무 밝아서. 짐을 두고서 창문가에 섰는데 어떤 빌딩들보다도 밝게 빛나고 있어서 당장 너에게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어. 이 말을 들으면 넌 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알잖아. 나 이상한데서 감성적인 거. 지금은 다 잊어버렸지만 나 문과였고. 넌 꼭 수학을 잘할 것처럼 생겨서 문학을 좋아했지. 스포츠백 안에 있는 시집이 얼마나 이질적으로 보였는지는 더 말 안 해도 알겠지? 그래서 더 눈이 갔던 거 같아.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나 그 다음날에 서점에 가서 그 시집을 샀어. 아직도 책장의 가장 잘 보이는 부분에 꽂혀 있어. 언제나처럼 시는 어렵지만, 네가 읽는다고 생각해서 끝까지 붙들었지. 함축된 것들은 언제나 힘들잖아. 나한텐 시가 그랬고 우리가 그랬어. 나한텐 우리가 너무 어려웠어.

   그때도 생각했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을래. 용서를 받을까봐 겁이 나. 너는 착하니까. 나를 용서해줄 거라는 느낌이 들어. 이것도 결국 나의 자만이겠지만. 그런데 말이야. 용서해주지 않으면 슬플 거야. 이런 성격이라 미안해. , 게이오에 합격했다는 소식은 여러 다리를 건넜어. 기숙사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도. 너에게서 너희 주장에게로, 거기서 네코마의 쿠로오에 다시 츠키시마한테 전해진 말을 내가 주워들었지. 공부를 잘했으니까 학교를 잘 갈 거라고는 생각했어도 게이오에 갈 거라곤 생각 못했던 것 같아. 너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학교라고 생각해. 시부야 거리에 널 세워놓고 어느 대학교 학생 같냐고 물어보면 아마 열에 여덟 정도는 게이오라고 말하지 않을까. 넌 척 보기에도 똑똑해 보이고 또 잘생겼으니까. 그때 느끼기에도 뭐랄까, 좀 도련님 같은 면이 있었지. 이런 말하면 얼굴 붉히면서 헛기침을 하겠지? 난 너의 그런 모습을 사랑했어. 정말이야. 좋아하는 것들을 볼 때마다 눈을 반짝이잖아. 주먹밥이라던가, 기막히게 올려낸 토스라던가. , 날 보고도 그랬고.

   난 네가 네 나이로 보이는 행동을 할 때가 정말 미치도록 좋았어. 넌 처음 봤을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 같지가 않았었으니까. 겉늙었다는 말이 아니라, 어른스러워 보였다고 할까. 그도 그럴게 부주장들은 대부분 3학년이었잖아 나도 그랬고. 강호교의 부주장이 2학년이라기에 놀랐었어. 금방 수긍하긴 했지만. 의젓한 얼굴을 하고 서 있는 모습도 물론 좋았지만 고등학교 2학년다울 때 너는 가장 너다웠다고 나는 생각해.

   너를 알고 나서부터 내 일상은 새로운 펜을 사고 싶은 충동의 연속이었다고 해야 할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 드라마에서 봤어. 새로 산 펜으로 마음껏 당신을 좋아한다고 쓰고 싶다.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아. 로맨틱하지. 그냥, 너무 좋았던 것 같아. 좋아한다는 말로 끝내기 안타까울 만큼. 이어지는 메시지가, 밤에 아주 가끔씩 걸려오는 전화가, 내 방 창문 밖의 달을 보면서 나눴던 그 별 의미 없는 대화들이 베개 옆에 고여들었던 때. 그때 썼던 교과서들을 보면 아마 네 이름을 열 개 정도는 찾아낼 수 있을 텐데.

   갑자기 연락을 끊은 이유는 너도 대충은 예상했을 거라고 생각해. 알다시피 배구로 대학교에 갈 순 없었고. 좋아했던 만큼 불안해했던 것 같아. 너도, 배구도. 무엇 하나 확신을 할 수 없던 때여서 난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들에게서 멀어지고 싶었어. 결과적으로 너도 그 중의 하나가 되어버렸고. 오해하진 말아줬으면 좋겠지만 누가 보더라도 너에게 마음이 떠났다거나, 더 나아가서는 싫어졌다던가 하는 종류로 밖엔 보이지 않았겠지. 오는 연락을 받지 않고 집 앞까지 찾아온 너의 얼굴도 보지 않았으니까. 마음이 흔들린다는 건 어떤 한 부분을 내어줬다는 뜻이야. 너는 그런 사람이었고 나는 불안했고 외부 세계의 무언가가 나를 뒤흔드는 게 무서웠고... 이만하자. 결국 변명이지.

   그 날 기억나? 네가 미야기로 처음 찾아왔던 그때. 우리 집 뒤편에 공원에서 같이 달을 봤었잖아. 보름은 아니었지. 거의 다 차긴 했어도. 선명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푸른 빛이 돌았고 넌 네가 본 달 중에 가장 예쁘다고 말했었지. 나도 고개를 끄덕였고. 나 고백하자면 그날 이후로 달을 좋아하게 됐어. 거긴 내가 좋아한다 해도 갈 수는 없는 곳이니까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는 게 다였지만 그래도 좋아했어. 그리고 너를 생각했어.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공유할 수는 있으니까. 달이 예쁘다는 말을 항상 네게 하고 싶었는데 메일로 보내기엔 또 부끄러워서. 보내지 못하고 저장함에 묵혀진 메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너는 모를 거야.

   그런데 오늘 달이 딱 그날 같았어. 고요하고 차갑지만 쌀쌀맞지 않고. 심지어 보름이야. 아주 멋지게 파랗기도해. 그래서 너에게 가야겠다고 생각했어. 네 학교로 가는 전철을 타고 있어. 도쿄는 언제나처럼 밝네. 미야기에 오고 신기해했던 것도 대충 이해는 돼. 늦은 시간인데도 전철역에 사람이 많네. 역이랑 캠퍼스가 가까워서 다행이야. 확실히 사립학교 분위기가 난다. 내 선입견 때문인지도 모르겠네. 넌 아마도 매일 이 길을 걷겠지? 수업을 들으러 가거나 친구들과 밥을 먹으러 간다거나, 뭐 그럴 때. 이 풍경 속에 가장 잘 녹아드는 건 너일 거라고 확신해. . 기숙사 건물 앞에 도착했어. 약도를 봤는데도 중간에 한번 물어봐버렸네. 아마도 사감일 사람에게 타 학교 학생인데 기숙사생 중에 찾는 사람이 있다고 했고 네 이름을 말하니까 아는 사람이라는 얼굴을 했어. 관계가 어떻게 되냐고 물어봐서 멀리서 찾아왔다고만 했어. 실례인줄 알지만 방송 같은 것으로 불러줄 수 있느냐 말했고 영 마뜩찮은 표정이었지만 마이크에 대고 네 이름을 말하고 계시네. 꽤 간곡하게 말했거든.

   자.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네. 넌 내려올까? 나를 보고서 돌아서진 않을까? 널 보면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해야 하나, 오랜만이라는 말을 먼저 해야 하나. 그것조차 정하지 않았네. 그래도 딱 하나 확실한 건 네가 보고 싶었고, 또 보고 싶다는 거야. 달이 차오르고 깎이는 걸 보면서 너를 생각하고 베갯잇을 적셨던 만큼. 딱 그만큼 나는 네가 보고 싶어.

 

 

 

 




   술에 취한 얼굴이 저 위에서 떨어지는 꽃잎 같았다. 흰 얼굴에 붉은 빛이 물들듯이 퍼진 게 그랬고 야들하고 얇아 보이는 것도 그랬다. 오이카와는 제 옆에 앉은 선배를 보면서 떨어지는 벚꽃 잎을 한 번에 잡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을 떠올렸다. 사랑의 어두에 이 들어가는지 안 들어가는지는 그닥 중요치 않다고 생각했다. 2개월간을 저 좋다고 따라다니던 선배는 귀여웠고 지금은 기분이 좋은지 제 옆에 앉아서 아이처럼 발장난을 치고 있었다. 이정도면 딱 괜찮다고 생각했다. 숨을 깊게 내쉬자 위를 향했던 얼굴이 틀어졌다.


   “안 좋은 일 있어?”


   얼굴만큼이나 단정하고 깔끔하던 평소의 말투와는 달리 끝이 늘어졌다. 아뇨. 없어요. 없는데... 오이카와는 마른세수를 하며 말끝을 흐렸다.

 

 

-

 

 

   이 선배는, 문학부 설탕선배 스가와라 코우시는 자신을 좋아한다.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티를 내면서도 들키지 않을 거란 확신을 갖는다. 저가 좋아하는 우유빵에 뜨끈한 커피를 두고 쪽지까지 남기면서도 그 나름의 비밀작전을 완수한 것에 웃는 얼굴로 돌아서는 게 어이가 없으면서도 예뻐서, 너무 귀여워서 오이카와는 조금만 더 두고 보기로 했었다. 철석같이 믿고 있는 설탕선배한테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할 날만을 기다렸다. 놀란 표정이랑 새빨개진 얼굴을 보면서 오늘부터 1일하자는 유치한 말을 꺼낼까도 생각했었다. 엠티에 오는 것도 대충은 예상했다. 1학년은 엠티 참가가 거의 강제였고 그랬기에 스가와라는 2학년 중에선 드물게 엠티에 동행했다. 순전히 오이카와 때문임을 본인들도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 오이카와의 옆자리 쟁탈전이 일어나지 않고 비워져 있던 것도, 초저녁부터 시작된 술자리에서도 마찬가지로 맞은편 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딴에는 아주 자연스럽게였지만, 일부러 자신을 위해 마련해둔 자리에 앉은 스가와라는 그때부터 동그란 눈이 제대로 뜨인 적이 없었다.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내내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어서 저래도 되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술고래로 소문이 난 것이 무색하게 금방 취해버려서 얼굴 근육이 마시멜로처럼 말랑하게 풀어져버렸다. 말리는 동기에게 경치가 너무 좋아서 기분이 좋아져 막 들어가버린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애교스럽게 내뱉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풀어진 얼굴이 정면의 후배를 볼 때는 수줍음을 한 겹 더 얹어서 달라지는 것도 꽤 쏠쏠한 구경이었다. 오이카와는 제 옆의 동기들과 이야기를 하는 체 하면서도 사실 온 신경을 제 앞의 선배에게로 쏟고 있었더랬다. 낯빛이 입고 있는 연한 분홍색 니트처럼 변한 게 귀여웠다. 저가 고개를 돌리고 있을 땐 주인 바라보는 강아지마냥 금방이라도 낑낑대는 소리를 낼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정작 눈이 마주칠라치면 홱 고개를 돌려버리는 건 무슨 게임 같기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오이카와는 기분이 좋았다.

   스가와라가 옆의 제 동기 놈의 어깨에 기대기 전까진 그랬다. 모리시타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스가와라의 손을 슬슬 쓸고 자꾸만 잔이 비었다며 술을 따라주는 것을 오이카와는 빠짐없이 눈에 담았다. 스가와라가 저를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공공연하게 설탕선배를 좋아한다고 티를 내던 녀석이었다. 소꿉친구인 이와이즈미는 종종 그런 말을 했다. 덜 자란 놈이라고. 180도 못넘은 사람에게 그런 말 듣고싶지 않다며 놀리는 것으로 답했지만 오이카와는 그 말에 긍정했다. 질투심 많고 영악한 어린 아이 같은 마음이 속에서 끓어올랐다. 오이카와는 들고 있던 잔을 내려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을 돌아 스가와라의 뒤에 섰다.


   “선배 너무 취하셨네. 바람이라도 쐬고 올래요?”


   스가와라의 어깨를 살살 쓸며 하는 말에 모리시타가 고개를 돌렸다.


   “뭘 오이카와 네가 굳이. 인기인은 앉아 있어야지. 선배는 내가 데리고 나갈게.”


   이렇게 나오신다 이거지. 오이카와는 이미 예상을 했던 차였다. 조금 치사한 방법을 쓰는 것도 대충 생각은 해놓았다. 어깨를 쓸던 손을 멈추자 스가와라가 고개를 돌렸다. 선배.


   “저랑 나갈래요. 모리시타랑 나갈래요?”


   스가와라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입을 떼었다. 오이카와!

 

 

-

 


   오이카와는 자신이 기억하는 한의 과거에서부터 언제나 인기가 많았다. 어른들에겐 싹싹하고 예쁜 아이라고 칭찬받았고 또래에겐 잘생긴 얼굴과 타고난 서글서글함으로 친해지고 싶은 아이로 군림했었다. 오이카와는 그들에게 딱 적당한 정도의 친절로 답했다. 이하로 떨어지는 일은 몇 있었어도 그 이상으로 대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확고해지는 그만의 룰에 이 같은 과 선배는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렇게 좋아 죽겠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왜 고백은 안하는지. 좋아한다는 완전한 말이 아니더라도 전공을 한껏 살려 나츠메 소세키처럼 달이 아름답다고만 해줘도 오이카와는 기꺼이 웃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근데 왜 고백을 안 해. 좋아한다고 직접 말한 적도 없는 빵을 어떻게 알았는지 매번 사물함 안에 두면서, 이렇게 바로 옆에 앉아서 힐끔대면서 얼굴을 쳐다보는 게 느껴지는데 왜 고백을 안 해.


   “선배.”

   “?”

   “제가 좋으면,”


   고백을 하셔야죠. 이렇게 충동적일 거라곤 오이카와도 생각하지 못했다. 최대한 모르는 척 즐기고서 침 발라놓으려던 계획이 다 무너졌다. 그래도 이 놀란 표정만큼은 계획에 있던 것보다도 더 극적이어서 오이카와는 조금 안심이 되었던 것도 같았다.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몰라요.”


   오이카와의 말에 스가와라는 얼굴을 두 손 안으로 숨겼다. 귀까지 새빨개져서 건드리면 톡 터져버릴 것 같아 겁이 나서 꼭 주먹을 쥐어 손가락을 숨겼다. 오이카와는 팔을 뒤로 짚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평상 뒤 벚나무엔 꽃이 만발했다. 선배한테 저 꽃을 닮았다고 말하면 기분나빠하려나. 근데 은유적인 그런 게 아니고 진짜 닮았는데. 작게 재채기하는 소리가 들려 오이카와는 몸을 바로했다. 몇 번인가 더 이어진 재채기에 오이카와는 입고 있던 후드 집업을 벗어 스가와라의 어깨에 둘렀다. 얼굴이 가까워졌고 스가와라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렸다. 눈이 마주쳐버렸다.

   아무래도 좋다고, 오이카와는 생각했다. 누가 먼저 고백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누구든 해버리면 그만인 거지. 오이카와는 무릎 위에 올려진 스가와라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포갰다. 겹쳐진 손을 바라보던 스가와라가 고개를 들었다.


   “선배가 안하니까 제가 먼저 할게요. 저 선배를...”


   입을 마저 떼려는 순간 스가와라는 술 취한 사람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날랜 동작으로 오이카와를 껴안았다. 당황한 오이카와는 항복이라도 하는 듯 손을 든 채로 작은 머리통을 바라보았다.


   “선배?”

   “너 진짜 잘생겼다. 진짜 너무 잘생겼어. 착하진 않은데, 응 잘생겼으니까 괜찮아. 너 얼굴 최고니까.”


   다시 기분이 좋아졌는지 흥흥하는 콧바람 소리까지 내며 몸을 좌우로 흔드는 것에 오이카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리 술에 취했다지만 너무한 타이밍이잖아. 오이카와는 여즉 들고 있던 손을 스가와라의 등 위로 둘렀다. 힘을 주어 당기니 따라오는 몸이 따끈했다. 저 좋다는 놈이 얼마나 많은지 이 선배는 알기나하나 싶다가도 결국 자신만 좋아한다는 결론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꼭 오늘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내일해도, 모레에 해도 되니까. 더 좋아지면 몰라도 마음이 없어지진 않을 테니까. 바람이 퍽 세게 불어 꽃잎이 휘날렸다. 침침한 가로등 불빛을 받은 꽃잎이 예뻤고 품 안의 선배는 더 예뻤다. 목덜미에 느껴지는 결 좋은 머리카락을 손을 들어 쓸었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드는 감촉이 사랑스러웠다.

 

 

-

 

 

   “나가사와. 혹시 밖에서 스가랑 오이카와 봤어?”

   “둘이 저 평상에서 껴안고 있던데요.”

   “껴안고 있었다고?”

   “. 스가랑 오이카와랑 둘이 껴안았댄다!”

   “스가선배랑 오이카와랑 껴안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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