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랫동안 앓은 병이에요. 적어도 제 인생에서는 가장 길어요. 여섯 살 때인가, 그때 유행하던 독감에 걸려 일주일을 꼬박 앓은 게 전까지는 가장 긴 기록이니까 진작 경신했다고 봐야죠. 처음엔, , 뭐였더라, 그래 양치질을 할 때였던 거 같아요. 아직 잠도 다 깨지 않은 상태에서 양치질을 하는데 혓바닥을 이렇게 쓸고서 거품을 뱉으려는데 갑자기 뭐가 목구멍에서부터 올라오는 게 느껴졌어요. 혀를 너무 열심히 쓸어서 그런가 했는데 눈을 떠보니까 웬 꽃잎이 흩어져 있는 거예요. 깜짝 놀랐죠. 소리를 안 지른 게 다행이에요. 치약 거품 사이로 꽃잎이 보이는 게 너무 비현실적이라 한참 동안을 서있었어요. 이게 뭔가 싶어서. 설마 내가 이렇게 되리라곤 생각 못했죠.

   네. 이런 병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저 고등학생이라구요. 이런 병에 걸릴만 한 사람들이 가장 많은 곳 아닐까요. 아뇨. 그 애는 같은 학교는 아니에요. 타 지역은 아니구요. 그런데 좀 떨어져 있어서... 미야기는 크잖아요. 전 아오바 구에 있는 학교고 그 애는 조금 더 멀리에 있어요. 아뇨. 딱히 그래서 볼 일이 없는 건 아니고... 사실 접점이 많지는 않아요. 저 배구부라고 말씀드렸던가요. . 저 배구부예요. 초등학교 때부터 했으니까 꽤 오래했죠. 그 애도 배구를 하고요. 딱 아셨네요. 상대팀으로 만났어요. 처음엔 이겼는데 나중엔 졌네요. 뭐 그렇게 됐어요. 아 그렇다고 제가 막 져서 걔를 좋아하게 됐다던가, 나에게 패배를 안긴 거 니가 처음이야 이런 건 절대 아니에요. 웃지 마시구요. 저 진짜 진지하다구요. 사실 저 첫눈에 반했다던가 그런 걸 믿는 사람은 절대 아니었는데... 그것도 뭐 그렇게 됐네요. 사실 나에게 일어나는 일 중에 예측할 수 있는 게 몇이나 되겠어요. 너무 애늙은이 같았나. 그 애도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불시에 찾아온 손님 같은 거죠. 금방 나가겠지 싶어서 내버려뒀는데 아예 자리를 잡아버린 거 같아요. 그래서 선생님을 찾아온 거고요.

   병원에 갔는데 치료법이 없다는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상담소를 찾아가라고 하기에 온 거예요. 왜 처음부터 병원에 안 갔냐고요? 저 남고생이에요. 그것도 아주 감수성 예민한.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게 만천하에 알려지는 거 영 부끄럽다고 해야 할까요. 생각보다 막 불쑥 튀어나오고 그렇지 않더라고요. 학교에선 뭐 공부하고 그러느라, 배구할 땐 그것만 생각하니까요. 가끔씩 막 올라오는 느낌이 들 때도 있긴 했는데 어떻게 잘 넘겼어요. 화장실로 막 달려가면 친구들이 급한 거 마렵냐고 놀리긴 했는데 그 정도야 뭐. 저도 하니까요. 그래도 밤에 자려고 누우면 자꾸 생각이 나서 막 급하게 화장실로 가고 그랬죠. 부모님이 걱정하시긴 했는데 적당히 둘러댔어요. 꿈에서도 여러 번 봤어요. 그래도 꿈속에선 꽃을 토한다거나 그러진 않더라고요. 덕분에 꼴사나운 모습 보이는 건 면할 수 있었죠. 뭐 꿈이긴 하지만.

   걔요? . 예뻐요. 제가 좋아해서가 아니라 진짜로. 선생님이 보셔도 예쁘다고 할 거예요. 잘생겼고 예쁘고 그래요. 그래도 예쁘다는 말에 더 어울리지 않나 하고 생각해요. 전 예쁘다는 말이 더 좋더라고요. 더 애틋하다고 해야 하나. 잘생겼다는 말은 너무 품평하는 것 같아서. 싫진 않지만 대충 느낌이 그렇다는 거죠. 전 그래서 그 애 얘기를 할 땐 항상 예쁜 애라고 말해요. 저한테 걘 예쁜 애니까. 여기, 눈가에 점이 있는데 그게 좋아요. 어떻게 있어도 딱 거기에 있는지. 웃을 때마다 그게 미묘하게 같이 움직이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움직임에 제가 반하지 않았나 싶어요. 절 위해서였던 적은 없지만. 좋아한다는 게 무조건 쌍방인 건 아니잖아요. 애초에 그랬으면 제가 이런 병에 걸려서 선생님한테 구구절절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었겠죠.

   고백은 글쎄요. 조심스러워요. 그래서 내내 혼자 앓았죠. 짝사랑이 끝나야만 치료되는 거라고 들었는데 쌍방은커녕 걔가 절 제대로 기억이나 할지 모르겠어요. 이름도 모를지도. 제 후배의 중학교 선배나 그 학교 배구부 주장 정도의 기억 아닐까요. 그런 애한테 다짜고짜 찾아가서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 좀 웃기는 일이라는 거죠. 착하니까 면전에 대고 한번 시원하게 토하면 제가 불쌍해서라도 어떻게 해줄 것 같긴 한데... 강요는 싫어요. 저 때문에 괴로워진다거나 마음 쓰는 거 바라지 않으니까. 그래도 내내 혼자 앓기만 하는 건 적성에 안 맞아요. 조금 친해져보려고요. 어떤 방법일진 아직 모르겠지만 저 한번 마음먹으면 하는 사람이에요. 그런 것 같다고요? 칭찬으로 들을게요. 학교도 다르고 시도 달라서 애초에 어떻게 찾아갈 구실을 만들까도 걱정이에요. 역시 후배가 잘 지내고 있는지 보러왔다는 게 그나마 나을까요. . 시간이 벌써 다 된 거예요? 빠르네요. 몇 번이나 더 찾아올지는 모르겠어요. 상담이라는 거 꽤 좋은 것 같긴 한데. 아마도 다음번에 찾아올 땐 좀 진전이 있을 때 아닐까요. 선생님은 절 응원해주셔야 해요. 제가 이런 병에 걸린 걸 아는 유일한 사람이시라구요. 좀 부담이 되나요? . 제 얘기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많이 정리가 된 거 같아요. 전 이제 그 애를 어떻게 좋아해야할지를 고민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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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퀘박스에 보내주신 하나하키 오슥을 주제로 써본 연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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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올린 글과 너무 비슷한가 하면서도... 요새는 이렇게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게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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