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너와 나는 별 접점이 없었다. 너는 도쿄에서 살다가 이 동네로 왔고 나는 날 때부터 이곳에서 자란 토박이였다. 당연히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추억 따위는 있을 리가 없었고 추억은 커녕 나는 네 이름도 긴가민가 할 정도로 너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너와 나의 유일한 접점은 네가 우리 집의 바로 옆으로 이사를 왔다는 것. 너와 나의 어머니가 어떠한 계기에선지 사이가 무척이나 좋아졌다는 것. 때문에 너와 내가 그녀들의 뒤에 서 어색한 눈인사를 나누었다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나와는 달리 학교에서의 너는 전학 온 첫 날부터 모두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은 듯 했다. 사실 그럴만도 한 것이 너는 키가 무척 큰데다 무엇보다 얼굴이 지나칠 정도로 잘생겼었으니까. 우리에게 너는 흔히들 말하는 도시 아이였으니 그것도 네 인기에 한몫을 했을 테다. 너는 네 얼굴을 가까이서 보려고 몰려든 다른 반 여자애들과 도쿄 말투로 말해보라는 말을 반복하는 남자애들 사이에 섞여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복도 창문 너머로 본 잘생긴 눈썹이 묘하게 찌푸려진 모양새가 웃겨 나는 나도 모르게 작게 웃음을 터뜨렸던 것 같다.

   같은 학교에 다녔지만 반이 꽤 떨어져 있어서 너와 나는 복도에서 몇 번 마주치는 것 빼고는 얼굴을 볼 만한 일이 없었다. 나는 그저 네 소문을 한 귀로 듣고 또 한 귀로 흘려 보낼 뿐이었다. 오이카와가 유이랑 사귄대. 헤어졌대. 새 여자친구를 사귄대. 오이카와는 못하는 스포츠가 없어. 나는 그렇구나. 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남 얘기 하기를 좋아하는 이들은 그런 반응을 관심이라 여겼는지 또 너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내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궁금해졌다. 지금 너의 얘기를 떠벌리고 있는 이 아이가 너에게 가서 내 이야기를 할 지를. 스가와라가 이랬어. 스가와라가 그랬어. 스가와라가 네 이야기를 할 때 고개를 끄덕였어. 너 그 애 앞에 가서도 내 얘기를 해? 충동적으로 나올 뻔 한 말을 입 안으로 삼키며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만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이름도 긴가민가 한 떠벌이는 제 이야기를 들어줄 다른 이를 찾아 나를 떠나갔다. 귀찮겠다 싶었다. 눈에 띄게 잘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시도 때도 없이 남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게. 하지만 그런 생각은 수업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에 깔끔하게 세탁되었다. 너는 내게 딱 그정도였다. 그때까지는.

   학교에 두고 온 물건이 있었다. 동아리 계획표였던가. 당장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져오지 않기에는 묘하게 거슬리는. 결국 그 종이 쪼가리에 나는 옷을 꿰어 입었고 그것이 너에 대한 내 무관심을 깨어버린 시작이 되었다. 교실에서 종이를 챙기고 다시 집으로 가려는데 중앙 현관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대여섯 쯤 되는 무리에 둘러싸인 너였다. 평소 같았다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두 손을 들고 거절의 제스쳐를 표하는 네가 다른 때 보다도 더 난처해 보여 나는 그쪽으로 다가갔더랬다. 우리 집으로 가자, 오이카와. 부모님이 여행가셔서 집에 아무도 없어. 우리 끼리 같이 놀자.

   한 여자애가 네 팔에 매달리는 것을 보고 나는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지난 번 문학 과제에서 일방적으로 연락을 피해 제 몫을 내가 다 하게 만들었던 아이였다. 저렇게 안하무인이어서는. 나는 나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혀를 차고 단 한번도 불러 본 적이 없는 네 이름을 마치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친했던 양 불렀다. 오이카와! 너는 갑작스럽게 불린 네 이름에 내 쪽을 돌아봤고 꽤나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나같았어도 그랬을 것이다. 친하지도 않은 옆집 사람이 그렇게 내 이름을 부른다면. 하지만 나는 너를 저 악의 구렁텅이에서 구해야 한다는 이상한 사명의식을 느꼈고 그 역할에 충실하도록 마음 먹은 참이었기에 네 놀란 표정은 모른 척하고 준비한 대사를 마저 쳤다. 어머니가 찾으시던데. 가봐야 하는 것 아냐?

   내 말에 너는 놀란 표정을 거두고 꽤 자연스럽게 네 팔에 걸린 손을 떼어냈었지. 얼른 가봐야겠네. 고마워, 스가쨩. 나는 그 때 네가 내 이름을 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덧붙여 네가 엄청나게 뻔뻔하다는 사실도. 스가쨩이라니. 순간 너와 내가 엄청나게 친한 사이였나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너를 잡아 끌던 무리에서 벗어난 너는 내 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집 가는 길이면 같이 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내게 다가온 너는 마치 우리가 둘도 없는 친구사이인 양 어깨동무를 했더랬다. 고마워. 작은 목소리에 나는 그만큼이나 작은 목소리로 답했었지. 별 거 아냐. 그 말 이후로 너와 나 사이에는 대화가 없었다. 하지만 너와 나의 친목을 가장하기 위한 일종의 연막이라 생각했던 어깨동무는 학교 교문을 나서고 난 후에도 풀리지 않았고 나는 그에 대해 딱히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너는 우리 집 앞에 다다른 후에야 내 어깨에 올려두었던 팔을 거두며 입을 열었다. 고마워. 나는 다시 답했다. 별 거 아니야.

   그 일 이후로 너와 나는 묘하게 가까워졌다. 학교에 너와 내가 사실 굉장히 친하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탓도 있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서도 이전과는 달라진 점이 몇 있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네가 우리 집 대문 앞에서 나를 기다려 함께 등교하는 일이 몇 번인가 있었고 급식실에서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일도 종종 있었다. 학교 내에서는 그랬고 밖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네가 자전거를 옆에 두고 대문 앞에 서 기다리고 있으면 나는 집에서 나와 네 자전거의 뒤에 탔다. 너는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이 페달을 밟았고 나는 그런 너의 티셔츠 자락을 잡고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을 보곤 했다.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바람에 흩날리던 네 갈빛 머리카락을, 섬유유연제 향기를 풍기던 티셔츠를, 네가 페달을 밟을 때마다 당겨지던 청바지를, 마침내 도착한 사람이라곤 없는 들판에서 잡았던 네 손의 촉감을. 아, 확실히 해두자면 먼저 손을 잡은 쪽은 너였다.

   칠월의 밤이었다. 풀벌레가 울고 인공위성인지 별인지 모를 것들이 하늘에서 두어개 쯤 반짝이는. 사람이 거의 드나들지 않는 작은 공원의 벤치에 앉아 나는 네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너는 한 손으로는 내 어깨를 잡고 있었고 남은 한 손은 네 무릎 위에 올려진 내 손등 위에 올려놓은 채였다. 나는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너는 내 손등을 감싼 손에 힘을 주어 깍지를 꼈고 그 순간 나는 문득 네가 내 열아홉의 기억 중 한 조각을 차지하여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벤치에 기대고 있던 등을 일으켜 너를 바라보고 손을 들어 네 뺨을 쥔 채로 입을 맞췄다. 너는 내 뒤통수에 손을 올렸고 우리는 꽤 오랫동안 그렇게 붙어있었던 것 같다. 내가 말했던가. 그게 내 첫 키스였다는 거.

   그 다음 날 너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초인종을 눌렀지만 답은 없었다. 가족들끼리 외출이라도 했나 싶어 집으로 돌아오니 엄마에게서 예상치도 못한 말을 들었다. 옆집이 이사를 했다는 말이었다. 본래 이사를 많이 다니던 집이라고. 아버지가 사업을 한다 했던가. 이제사 좀 친해지나 했더니 가버려서 아쉽다는 엄마의 말에 나는 어떤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눈치가 빠른 어머니는 내 표정을 보고 왜 그러냐 물었지만 나는 몸이 조금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 내 방으로 올라갔었다. 옷도 벗지 않은 채로 침대에 쓰러진 나는 그 날 퍽 많이 울었다. 입술을 깨문 틈 사이로 너에 대한 원망이 소리없이 쏟아져 나왔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그런 이별을 바란 것은 아니지만 그저 잘 가라는 인사정도는 할 수 있게 해줬어야지.

   그 후로 많은 것이 변했다. 네가 떠나서라기 보다는 그냥 상황들이 그랬다. 아버지가 하던 사업이 망해 동네를 떠나야했고 당연히 학교도 전학을 가게 되었다. 아버지는 도박에 빠져들었고 어머니는 숨길 노력도 하지 않으며 다른 남자들을 만나러 다녔다. 두 분은 결국 이혼했고 어쩌면 다행스럽게도 내 양육권은 엄마에게 넘어갔다. 새 아빠라는 남자와 살림을 차리기 위해 나를 없는 사람 취급 했지만 엄청나게 슬프다거나 엄마가 원망스럽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쑥스럽지만 공부를 꽤 잘 했던 편이라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갈 수 있었다. 기숙사에 들어가려 했지만 당장에 돈이 없었고 결국 학교 근처에 손바닥만 한 방을 하나 얻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지만 생활비를 혼자 벌여야 했기에 학비를 제외하고 나서도 들어가는 돈이 많았다. 다달이 들어가는 집세, 식비 같은 것들. 하루종일 아르바이트를 해야했고 공부할 시간이 그만큼 줄어들었고 성적이 떨어졌고 장학금을 받기가 어려워졌다.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결국 들이지 말아야 할 곳에 발을 들였다. 하룻밤에 4만 엔. 내 얼굴이 반반해 값을 더 쳐주는 것이라 했다. 4만 엔이면 한 달 식비가 해결되는 돈이었다. 눈 딱 감고 한 번만. 딱 한번만 하는거야. 억울할 정도로 흰 시트가 깔린 호텔의 침대에 앉아 나는 그렇게 주술을 외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얼마 후 문을 열고 들어온 얼굴에 나는 차라리 내 눈이 잘못 된 것이기를 바랐다. 너무나도 익숙한, 하지만 묘하게 낯이 설어진 얼굴에 나는 눈을 꾹 감았다 떴다. 분명히 너였다. 혹여라도 잘못 봤다고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 너였다. 나는 이 상황이 믿기 싫어 고개를 작게 도리질치다 눈가를 확 찌푸렸다. 너는 나를 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때문에 어떤 표정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순간 나는 참을 수 없는 미안함에 사로잡혀 눈을 감았다. 어쩌면 네게 나의 의미는 내가 생각하는 너의 의미와 같을 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그것을 망친 것이 못견디게 부끄러웠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여전히 침대 위에 앉아 있었고 너는 문가에 서 있었다. 나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차라리 웃는 쪽을 택했다. 실없이 웃으니 땅으로 향하고 있던 너의 시선에 나에게 닿았다. 나는 네 눈을 마주보면서도 억지로 올려놓은 입꼬리를 내리지 않았다. 슬핏 찌푸려진 네 눈썹이 그 때의 너와 같아 나는 아주 잠시 진심으로 웃었다. 너와 다시 만난다면 그 곳은 우리가 처음 손을 잡았던 바다나 내가 먼저 너에게 입맞추었던 공원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우리는 이렇게 재회하고 말았구나, 토오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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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옛날에 썼던 글 오이스가로 재업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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