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른 111차 전력 <새해>




   종말은 짝사랑과 맞닿은 부분이 퍽 많은 것 같다고 아카아시 케이지는 생각했다. 끝, 죽어버리는 것, 상실, 아픔 같은 네거티브들을 모두 모아놓은 후에 색도 모양도 모르는 꽃의 씨앗을 심어두는 일. 지극정성으로 물을 주어도 어떤 꽃이 필지, 아니 피어날지 조차 모르는 것이 종말이자 사랑의 본질이었다. 이제까지 그의 인생, 그러니까 전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운이 좋아 유학까지 다녀온 인생에 부정적인 것이 침입할 틈은 거의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남들보다 조금 빠른 부모의 죽음이 거의 유일한 그림자였다. 타고난 머리가 좋고 노력도 할줄 아는 덕에 그는 어렵지 않게 시험을 합격하고 국가소속의 재난 연구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전공을 살려 취직한 것이지만 재난 연구라는 이름은 영 기분이 좋지 않다고 그는 내내 생각해 오던 참이었다. 이런 연유에서 아카아시 케이지는 남들보다 아주 조금이나마 무언가를 먼저 알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를테면 땅이 흔들리는 일이라던가, 공허한 바다에서 생겨나는 폭풍이라던가 혹은 땅 아닌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일 같은 것들.

   이미 처음부터 예정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자연스럽지 못하지만 지극히 자연스러운 죽음. 거부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것에 짓눌린 마지막 같은 것. 이때문인지 국장에게서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그는 크게 동요하는 기색을 띄지 않았다. 작별을 고하는 동료들 사이에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일부러 책상의 어떤 물건도 건드리지 않았다. 어린 자신과 부모님이 찍힌 사진도 그대로 두었다. 내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굳이 일상을 흩뜨리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핸드폰을 들어 날짜를 확인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는 날짜라던가 시간 같은 것을 잊기 마련이었다. 확인한 날짜는 얄궂게도 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다. 12월 31일. 그래. 그러고보니 내일은 휴일이었다. 그러면 뭐해. 세상이 망한다는데. 지하 주차장에 세워두었던 차에 시동을 걸고 집으로 향했다. 납골당에 들릴까 생각해보았지만 그만두었다. 향하고 싶은 곳은 정해져 있었다. 종말과 맞닿은 것. 세상이 마지막이라는데 제 사랑 또한 그 끝을 볼 자격이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우편함을 확인했다. 카드 고지서와 백화점 전단이 끼어져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언제나 그래왔듯 중간쯤에 위치한 숫자를 눌렀다. 603호에 잠깐 시선을 주었다가 맞은편 604호 앞으로 가 초인종을 눌렀다. 추위때문인지 긴장 때문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손가락이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없을지도 몰랐다. 친구를 만나러 갔을지도, 연말이니 새해를 맞으러 본가에 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있다면, 만약에 어디에도 가지 않고 집에 있다면 그 또한 우연으로 운명으로 치부해버릴 용기가 그에겐 있었다. 한번 더 초인종을 누르려 손을 올렸을 때, 안에서 낯설고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만요 하고 울린 목소리에 뒤따라 발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악장처럼 이어지고 어떠한 거름막도 없는 그가 드러났다. 아카아시 케이지의 짝사랑 상대이자 종말을 예고받자마자 떠오른 얼굴이고 매주 주말 정오 쯤에 피아노를 연주하는, 드뷔시를 특히 잘 연주하고 매운내가 나는 음식을 자주 요리하는 스가와라 씨. 물음표를 띄운 얼굴에 대고 그는 작게 숨을 들이쉬고 입을 떼었다.

   “안녕하세요. 미래에서 왔습니다. 오늘 세상이 멸망한다는 걸 알려드리려고요”

 


-



­

   곧바로 문이 닫히거나 심하면 경찰에 신고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예상과는 달리 스가와라는 별 다른 동요를 내비치지 않았다. 아카아시와 담담히 눈을 맞추던 스가와라는 웃는 낯으로 천천히 입을 떼었다.

   “그래서요?”

   “예?”

   “그, 미래에서 오셨다면서요. 그래서요. 왜 미래에서 오신 분이 제 집 앞까지 와서 세상이 망한다는 걸 알려주는 거예요.”

   예상치 못한 전개에 아카아시는 당황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그저 알려주고 싶을 뿐이었다. 오늘이 아마도 세계최후의 날이 될 것이라고. 그러니 어떤 방법으로든 행복하라고.

   “전 뭐 특별하지도 않고요. 착한 일 많이 한 것도 아니고. 진짜 미래에서 오신 분이면 이런 데가 아니라 방송국에 가서 세상이 멸망한다고 해야하는 거 아닌가요.”

   “세상 같은 건 관심 없습니다.”

   득달같이 나온 답에는 스가와라도 조금 표정을 구겼다.

   “스가와라 씨가 오늘 하루동안 행복한 거. 그게 목적이에요.”

   찰나의 찡그림은 어디로 갔는지 스가와라는 다시 담담한 표정으로 문 앞에 선 아카아시를 응시했다.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던 아카아시가 고개를 숙일 때 쯤이 되어서야 스가와라는 말을 이었다.

   “얼마나 남았나요?”

   문 너머 스가와라의 집 거실에 걸린 벽시계를 확인한 아카아시가 대답했다.

   “일곱시간 정도요.”

   “얼마 안 남았네요.”

   스가와라는 그렇게 말하곤 문을 닫았다. 할 일은 다 했다고, 아카아시는 생각했다. 진짜로 그 말을 믿든, 그냥 정신나간 놈의 장난으로 치부해버리든 그가 남은 일곱시간을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또 그렇게 된다면 그걸로 만족이라고. 그런 이유에서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을 돌렸을 때 스가와라의 대문이 다시 열린 건 그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정강이까지 내려오는 패딩 점퍼를 입은 스가와라가 문을 잠그며 말했다.

   “우리 바다를 보러 가요. 한 해의 마지막 날에 바다를 보면 저 조금은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한적한 한 해 마지막날에 이런 폭탄을 던져놓고 설마 안 간다는 말은 하지 않겠죠. 패딩 주머니에 열쇠를 집어넣으며 스가와라는 그렇게 말하곤 웃었다.

   “모를 수도 있던 특권을 빼앗은 대가를 치르셔야죠. 자. 얼른 바다로 가요.”



­-



   스가와라는 차에 타자마자 라디오를 틀었다. 소리만 들려오는 것임에도 한 해를 떠나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설렘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라디오에서도 안 나오네요. 멸망이라던가 끝이라던가 하는 얘기.”

   “그러게요.”

   멍청하게 들릴 수 있는 대답임을 알고 있었지만 아카아시의 감상 또한 그랬다. 속보로 들려와야 마땅한 이야기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마 높으신 분들의 다툼 때문이리라. 아니면 벌써 이 이야기는 묻어두기로 서로 작당하고 방공호에 들어가 있는지도 모르고. 꽤 가능성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아카아시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빨간불에 멈춰서고 횡단보도의 사람들이 길을 건너고, 웃는 낯의 가족들과 연인들. 달라진 것은 없었다. 너무나도 한결같은 모습에 아카아시는 조금 울고싶다고도 생각했다. 아무 것도 모른 채로 종말을 맞는 것이 저들에겐 더 나은 길일지도 모르겠다. 그토록 기대하고있는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는 없겠지만. 고개를 돌려 조수석의 스가와라를 보았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 처음 그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었더라. 생각에 빠져들려 한 즈음 신호가 바뀌었다. 미야기 내륙에서 바다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터였다. 고속도로에 진입하고나서도 둘 사이에는 별 대화가 없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노래만이 둘 사이를 채웠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종말이라. 무슨 만화같은 이야기네요.”

   두번째 휴게소를 지날 즈음에 스가와라가 한 말이었다. 저도 그렇다고 생각한다는 말은 입술 안으로 넣어두었다. 미래에서 왔다는 터무니 없는 거짓말에 대한 자각이 아주 조금은 있던 탓이었다.

   “왜 하필 저한테 오신 거예요? 아랫집 사는 아이가 저보다는 더 행복해야할 사람인데. 그냥 랜덤인 거예요?”

   “그야.”

   핸들을 잡은 손에 조금 더 힘을 주며 아카아시는 말을 골랐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가 끝나고 나서야 입을 떼었다.

   “스가와라 씨만큼 매운 음식을 이웃에게 잘 나누어주는 사람도, 매주 정오때마다 드뷔시를 잘 연주하는 사람도, 길고양이들을 위해서 아파트 관리소장과 싸워가면서 밥을 주고 이불을 가져다 놓는 사람도, 상냥하게 웃는 얼굴이 잘 어울리는 사람도 없으니까요.”

   숨도 거의 쉬지 않고 흘러나온 말에는 그도 조금 놀랐는지 눈이 커졌다. 빨개진 얼굴을 바라보던 스가와라는 입꼬리를 올려 웃곤 의자에 몸을 기댔다.

   “랜덤보다는 기분 좋은 이유네요.”

­

   해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난 다음에야 둘은 바다에 도착했다. 육중한 몸을 뒤채는 바다를 바라보던 스가와라는 파도가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카아시는 시계를 확인했다, 두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스가와라의 옆에 앉으며 그는 말을 붙였다.

   “어때요?”

   “좀 행복한 것 같아요.”

   스가와라는 그렇게 말하곤 아예 모래사장 위로 누워버렸다. 이를 내보이며 웃더니 말을 이었다.

   “겨울바다도 좋고, 아무도 없는 건 더 마음에 들고, 파도 소리도 좋고, 멸망의 때에도 내 옆에 있어주는 옆집 남자가 있는 것도 좋아요. 행복해.”

   당황한 표정의 아카아시를 올려다보며 스가와라는 말했다.

   “애초에 오늘 세상이 망한다면서 미래에서 왔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되잖아요. 옆집 주민 씨. 아카아시 씨 맞죠? 얼마나 집을 자주 비우는지 덕분에 NHK 수금원이 한달에 두 번은 우리집 문을 두드렸었다고요.”

   “그... 멸망이라는 건.”

   “거짓말은 아니겠죠. 부녀회장님한테 들었어요. 무슨 재난연구소 같은 데에 다닌다고. 워낙 남 얘기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아깝진 않아요?”

   “뭐가요?”

   “몇번 보지도 않은 옆집 사람이랑 마지막을 같이 한다는 게.”

   “글쎄요. 그냥 옆집 사람이라면 좀 안타까울지 몰라도 술에 취하면 한밤중에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또 그게 은근히 듣기에 좋고, 부르는 노래라는 게 다 20년은 된 가요지만 그게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고,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러 문을 나서는 근면성실한, 내가 고양이들 먹으라고 둔 사료 옆에 캔을 뜯어 두는 마음씨 좋은 나를 좋아하는 옆집 사람이라면 괜찮지 않을까요?”

   웃으며 쏟아진 스가와라의 말에 아카아시는 당황하면서도 결국엔 웃었다.

   “우리 손이나 잡고 있을까요? 좀 시려워서.”

   스가와라의 말에 아카아시는 끼고 있던 장갑을 벗고 손을 맞잡았다. 생각보다도 가느다란 손가락이 얽혀왔다. 지금 그에게 한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이 손가락이 건반 위를 노니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누워요. 별인지 인공위성인지는 몰라도 꽤 괜찮은데.”

   스가와라의 권유에 아카아시는 손을 잡은 채로 모래사장에 누웠다. 파도소리를 배경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다. 언제부터 봐왔는지, 언제부터 서로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왔는지, 고등학교 때의 이야기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지금의 직장은 어떤지도 말했다.

   “같은 때 눈을 감으면 같은 때에 눈을 뜰 수 있을까요?”

   “글쎄요.”

   “그랬으면 좋겠는데.”

   나도. 라는 말은 너무 뻔한 것 같다 생각해 입밖으로 내지 않았다. 대신 아카아시는 잡았던 손에 힘을 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같이 힘을 주는 것에 뜻이 전해진 것 같아 웃었다.

   “몇 시예요?”

   “열한 시 반이요.”

   “삼십분 정도 남은 건가.”

   스가와라는 엄지손가락으로 맞잡은 손을 쓸며 말했다.

   “해피 뉴.”

   “해피 뉴?”

   “오늘을 못 넘기고 멸망한다면서요. 이어가 되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뒷말은 우리가 후에 정하기로 해요.”

   “응. 그래요. 스가와라 씨도 해피 뉴.”

   “코우시예요.”

   “케이지.”

   “케이지. 해피 뉴.”

   “코우시도. 해피 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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