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스가 전력 30회차 <눈이 마주친 순간>

컬러버스 AU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는데, 나 한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어.”

   여름 방학 때 여행을 가자는 말에 연인은 그렇게 대답했다. 왜하고 물으니 단어를 고르는 데 고심하는 듯 입술을 조금 내밀길래 뽀뽀해달라는 무언의 압박이냐 물었다. 이를 내보이며 웃는 얼굴은 실없는 농담에 대한 과분한 답이었다.

   “내 생각엔 엄마가 좀 염려를 했던 것 같아. 그러니까 온통 무채색이었잖아. 너를 만나기 전까지는. 시커먼 게 뒤채면서 왔다리 갔다리 하는 걸 어린 내가 보면 무서워할 거라고 생각을 하셨겠지. 그리고 실제로 그랬을 거고. 나 어렸을 때는 겁이 많았으니까.”

그렇게 말하고 코우시는 다시 웃었다. 그의 웃는 얼굴은 분홍색이었다. 아주아주 얇고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분홍색. 저기 창밖에서 흩날리는 벚꽃 잎 위에 살포시 앉은 분홍빛의 조각이 그의 얼굴에 있었다.

   내가, 아니 우리가 색을 보게 된 것은 정확히 오늘이 정확히 한달째였다. 아무 기대도 않고 간 신입생 환영회에서 나는 새 세상을 보았다. 과장이나 거짓 한 톨 없이 나는 그날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할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학교 정문 근처 오래된 주점의 미닫이문을 열고 눈이 마주친 그 찰나의 순간 우리는 주점의 형광등 빛이 마냥 희지만은 않다는 것과, 술안주로 나온 새우튀김의 꼬리가 검정색이 아니라는 것, 세상이 이렇게나 많은 색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나는 내게 새 세상을 선물한 이가 누구인지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눈이 마주치고, 나와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어서 자리에 앉으라는 선배들의 말에 나는 아직 비어있던 그의 앞에 앉아 곧장 입을 떼었다.

   “이제까지 어디에 숨어있었던 거야.”

   환희를 억누른 내 목소리는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다. 마주친 눈동자는 묘한 빛을 띄고 있었다. 나는 학습으로 배운 색깔의 이름과 실제를 연결하지 못했으니 그의 눈동자가 어떠한 색들의 조화인지도 표현하지 못했다. 이전까지의 내 세상은 그렇게나 좁았다. 나의 말에 그는 눈을 휘어 웃었다. 끝에 눈물 비슷한 게 고여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앞으로 잘 부탁해.”

   가장 완벽한 첫 인사라고 생각했다. 그 웃음과 대답은. 내가 그에게 반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으니까.


*


   그냥 우리는 당연하게 연애했고, 당연하게 집을 합쳤다. 한달 새에 일어난 일 치고는 굉장한 변화였지만 그 어떤 변화도 우리가 세상을 보는 데에 생긴 변화보다는 작았다. 우리는 미대에 재학 중인 내 친구 하나마키에게서 빌려온 컬러칩을 보며 글로만 배웠던 색을 실제와 매칭하는 일에 매진하곤 했다. 내 머리카락을 갈색이라고, 그의 머리카락은 회색이라고 불렀다. 다만 그 눈동자만큼은 지칭하는 하나의 말이 없어서 나는 그를 학습하며 혼합이라는 개념도 배우게 되었다. 나의 갈색과 그의 회색과 아주 약간의 노란빛과 또 햇빛의 색을 한웅큼 쯤 넣은 게 그의 눈이었다. 우린 새로 맞이한 세계에 어쩔줄을 몰라하는 반면 서로 눈을 맞추는 데에는 어색함이 없게 되었다.

   “그래서, 바다에 가고 싶다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얼굴이 화사해서 눈 옆의 점에 입을 맞췄다. 살며시 감기는 눈이 사랑스러웠다.

   “그래. 바다에 가자.”

   “어떤 색일까. 바다는?”

   “글쎄. 예쁠 거야. 아마도.”

   나는 웃으며 대답했고 그 또한 눈을 맞추며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예쁠 거야. 아름다울 거야. 그게 굳이 바다가 아니더라도, 너와 함께 보는 세상이 예쁘지 않을 리는 없지 않니.


*


   더운 것이 싫다는 그의 의견에 따라 우리는 홋카이도까지 올라갔다. 호텔 방에 짐을 내리자마자 어서 바다에 가자고 졸라대는 통에 우리는 짐을 풀지도 못하고 바로 뒤편의 바다로 갔다. 그리고 우릴 맞이한 풍경은, 나의 알량한 어휘가 다 표현하지 못할 것이어서 그저 아름답다는 형용사로 그 모습을 논할 수밖에 없었다. 아름답다,는 나의 말에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고 본 연인의 얼굴은 웃을 것 같기도, 울 것 같기도 해서 나는 더이상 말을 붙이지 못했다. 대신 손을 잡았다. 네가 보는 것을 나도 보고 있다는 무언의 말이었다. 그의 눈에는 바다가 있었다. 그렇게나 보고 싶어 했을 검지 않은 바다와 그와 맞닿은 하늘과 우리가 발을 딛고 선 흰 모래사장이 있었다.

   “토오루.”

   “응?”

   “고마워.”

   너는 항상 내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구나. 그 말을 듣고 나는 어떻게 반응했더라. 친구들 앞에서처럼 잘난 체 하며 어깨를 으쓱였던가, 언제나처럼 웃으며 별 것 아니라고 답했던가. 나는 그냥 잡았던 손에 힘을 더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했으니까. 나 또한 그렇다는 말은 의미를 흐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말은 필연적으로 모자란 데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의 색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너와 눈이 마주치면서부터 얻은 새로움의 환희를 단어의 나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처럼. 힘을 더해오는 맞닿은 손이 느껴졌다. 그래. 이거면 충분했다. 

   바다는 마냥 파랗지 않았다. 이 또한 여러가지의 혼합이었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내게 완벽한 새로움을 선사한 연인의 눈동자처럼. 그 속에는 분명히 사랑이 있었다. 맞닿은 손에서 피어난 것들이 파도를 타고 더 깊은 곳으로 녹아들었다. 발끝을 간지럽히는 파도 거품을 보다가 눈을 마주했다. 바다를 담던 눈 안에 내가 있었다.

   “무섭지 않지?”

   “그래. 이제 엄마한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야겠어.”

   서로의 눈 안에 서로가 있다는 것, 너의 눈을 통해 나를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마주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세상을 얻었다는 것. 고개를 들어 파도 너머의 바다를 보았다. 햇빛이 표면에 비쳐 반짝이는 길이 생겨난 바다를. 난 너와 함께라면, 이렇게 함께 손을 잡은 채라면, 저 길을 걸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아. 코우시, 나의 사랑, 나의 연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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